안겨서 자는 잠의 생각
어제 기절하듯 동생 침대에 누워 기억이 끊겼고 새벽 네시 반쯤 눈을 떠보니 옆구리에 동생과 고양이가 비집고 들어와 자고 있었다.
내가 몸을 모로 돌리니 동생도 뒤척이다 품으로 쏙 안겨 쌔근쌔근 잔다.
아마 잠에서 깨어 본인이 내게 안겨 잤다는 사실을 알면 토하려 들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다 큰 애가 귀엽다. 어릴 때 자주 이러고 잤던 것 같은데.
자존심도 세고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동생이었지만 이사 오기 전까진 맨날 한 이불을 같이 덮고 자다 보니 나이차 꽤 나는 언니인 나에게 동생은 종종 안겨 잠들곤 했었다. 특히 엄마가 우리 두고 며칠 집을 나갔을 때, 청소년기에 막 입문하던 자존심 센 동생이 참다 참다 울음을 터트리고 무너지듯 내게 안겼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동생은 어떤 때는 꼭 친구 같았고 어떨 땐 내가 지켜줘야 할 약하고 여린 존재 같았다. 그리고 가끔은 어릴 적 무서운 밤을 지켜줄 것 같던 내 품의 곰돌이 인형처럼 이 작은 것이 갑자기 커져 나를 지켜주는 용사가 돼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했다.
동생과는 꼭 한 동그라미였다가 깨어진 조각이 다시 만나듯 아무리 얽혀있어도 끼워 맞춘 듯 편안했는데, 이후에 어떤 사람과 안고 있어도 그렇게 편한 느낌이 든 적은 없다. 오히려 낯선 이물감에 적잖이 당황하곤 했다. 나는 동생과 편안히 엉켜 자던 수많은 날들 때문에 이후 나와 함께 잠드는 누구든 편하게 조각이 맞을 것이라고 속단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잘 맞는 조각이었지만 항상 안겨있는 쪽은 어리고 작은 동생이었고 안아주는 쪽은 상대적으로 좀 더 큰 나였다. 이제 나보다 키마저 훌쩍 커버렸으면서 그때의 포지션이 남아서인지 아직까지도 늘 기대는 쪽은 동생, 어깨를 내어주는 쪽은 나다.
동생이 깰까 봐 숨까지 조심조심 쉬고 있는 중에 문득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편하게 '안겨' 있던 적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보게 되었다. 작년 가을쯤 헤어진, 오래되고 나이 많은 연인의 품이 있긴 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바쁘고 방황하던 나의 지난날에 오히려 집보다도 편했던 품이었다. 늘 더 큰 품을 내어주는 것이 익숙했던 내게 그 넓고 무른 품은 센세이션했다. 나는 부려보지 못했던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고 늘 동경(?)했던 막내 포지션을 잔뜩 누렸다.
하지만 조각이 딱 맞는다는 느낌보다는, 아주 커다란 쿠션에, 잠시 여행 나온 조각이 푹 잠겨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쿠션에서 한참을 쉬고 나와 혹시 나와 맞는 조각이 어딘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돌아다니기도 했다.
어릴 적 읽었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셸 실버스타인)>이라는 동화가 있다. 자신의 조각을 찾아 떠나는 흠집난 동그라미의 인생 이야기이다. 여러 과정을 거쳐 동그라미는 마침내 자신의 흠과 딱 맞는 조각을 찾게 된다. 하지만 동그라미는 흠집난 자기 자신이었던 시절이 더 온전했음을 깨닫고, 딱 맞는 조각과 이별하게 된다.
여러 생각의 항해를 하다 다시 안겨있는 동생을 보니, 나도 그냥 이렇게 흠 난 채로 가끔 동생이나, 고양이나, 작은 존재들의 쉴 곳을 내어주면서 사는 것이, 나만의 조각을 찾으려 애쓰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편이, 더 완전하게 불완전한 나일 수 있는 방법 같았다.
생각의 끝에, 여트막한 미소가 났다.
그렇게 통 터오는 새벽의 새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동생을 안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