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불 Sep 08. 2020

‘감정 도사’의 미술 강의 듣기, <예술적 감정조절>

고수들만 모여라, 감정 전문가의 이야기

책을 받고 대략적인 구성을 살펴보자마자 이건 ‘무림의 고수’처럼 ‘감정의 고수’가 쓴 책이구나 싶었다.  저자가 본인의 박사 논문을 출간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꽤 묵직한 무게의 내용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향기가 강하게 풍겨왔다. 이 사람, '도사'가 아닐까?


 실제로 읽다 보니 내가 책의 목차를 살피며 생각했던 표현이 그대로 쓰인 부분이 등장했다.


  누구도 100% 완벽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혹은 먼저 되어야 할 것은, 자신을 잘 알고 자기감정으로부터 자신의 안위를 지키며, 기왕이면 이를 생산적으로, 나아가 예술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즉, ‘감정 도사’가 되어야 한다. 그게 이 책의 목표다. p.150


 고로 이 책은 감정을 다스리려는 사람 중, 입문자 말고,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해 손 안 대고 둥둥 띄우는 정도의 기인 열전을 벌이고 싶다, 하는 ‘감정 도사’가 되고픈 고수들에게 추천한다.


-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면, 먼저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라는 제목의 ‘들어가며’ 파트가 등장한다. 도입부는 감정조절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데, 추상적인 개념인 ‘감정’을 마치 반려견이나 어린아이와 같은 실체와 형체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분명한 사실은, ‘사람의 마음’에는 언제나 감정이 존재한다. (중략) 내가 출근했다고 해서 집에 있는 반려견이 온데간데 사라지지는 않듯이. p.4

 그렇다면 때때로 감정을 보듬어줘야 한다. 통상적으로는 ‘주인의 태도’를 잃지 말고. 물론 특정 감정에 ‘압도’당할 때 폭발적으로 솟아 나오는 창의력 등은 매력적이다. 이때는 ‘노예의 태도’가 되어볼 만도 하다. 아마도 살아 나올 수만 있다면. 그런데 ‘압도’는 거대한 기운이다. 그리거 이를 활용하는 통찰력과 기지가 있는 사람은 결국에는 자기 삶의 ‘메타-주인’이다. p.5


  이렇듯 변덕스럽고 다루기 힘든 감정을 다른 것도 아닌 ‘예술 작품’ 속에서 읽어내 삶에 적용한다는 주장에 솔깃했다. 과연 어떻게 예술품에 드러난 감정들을 읽고 그를 바탕으로 나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일까?


-


  이어서는 <감정조절법>을 설명하는 이론편이 이어진다. 음과 양, 방향성, 양적, 질적 기준으로 감정을 분석하여 ‘감정조절표’로 구체화 한 부분이 굉장히 독특하다. 각 기운에 따라 양기의 감정이면 붉은색, 음기의 감정이면 푸른색, 그 중간 정도면 보라색으로 감정의 기를 나누고, 정도에 따라 +.-로 표현한다. 또 그 발산이 어떤 방향인지, 면적이 넓은지 좁은지 등을 소대표나 종횡표로 정리한다. 이론편이 참으로 난관인데 어째서 감정이 양기나 음기를 띄는지, 도대체 어떻게 발산의 방향을 상정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작가의 이론을 익히고 나면 실제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전시물들을 대상으로 감정조절표를 적용하는 ‘실제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왜 굳이 예술품, 그것도 미술전시 작품 속 인물에 감정조절표를 적용하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네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책의 내용에 나의 이해를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흥미를 유발한다. 만일 소재를 ‘나’로 둔다면 소재가 한정되어 독자들의 흥미가 덜 할 수 있으나 작품 속 인물의 경우 다양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다양한 관점이 가능하다. 미술 작품 속 인물은 말이 없다. 그들을 어떻게 분석하든 그것은 독자의 마음대로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 기초적인 훈련으로 적합하다. 그들이 마음 상할까 걱정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넷째, 예술적인 창작에 유리하다. 그들을 마음껏 가공해 작가적이고 예술적인 상상력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작품 속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상 한정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고는 본격적으로 작품 해석에 들어간다.


  책에서 작품에 감정조절표를 적용하는 법은 먼저 예술 작품을 보여주고 그에 따라 정리한 감정분석표를 보여주고 이후 작품의 기초정보를 알려주고 그것에 입각해 감정분석표 풀이해주는 방식이다. 실제편에서는 저자의 흥분되고 신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실제로 미술관을 투어 하며 한껏 신난 목소리의 교수님의 가이드를 듣는 대학생이 된 기분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분석은 174쪽, 7세기에 만들어진 <부처님의 두상>과 장 레옴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1890)의 작품 비교였다. 먼저 감정의 ‘면적’을 측정하는 ‘소대비’에 따르면 전자는 음기를 띄고, 후자는 양기를 띤다. 나 역시 이 두 작품을 보았을 때 전자는 매우 평화로워 그 기운이 음기일 것이라 추측하고 후자는 매우 강렬해 양의 기운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깊숙이 분석해 감정의 온도나 색 등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부처님의 두상>은 양기도 음기도 아닌 중간 정도의 ‘잠기’,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는 ‘음기’를 띄고 있다는 결론이 났다. 감정이라는 것은 표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을 깊게 들여다보고 이해할 때에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내가 어떤 현상을 보았을 때 표면적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상대가 띄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얼마나 많이 표면적으로만 상대의 감정을 간파했다고 생각하곤 했었나, 성찰이 되었다.


-


 읽는 내내 관심법(상대편의 몸가짐이나 얼굴 표정, 얼굴 근육의 움직임 따위로 속마음을 알아내는 기술)으로(?) 움직이지 않는 작품들의 감정을 읽는 ‘도사’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독특한 관점으로 감정을 분석하는 이론을 만들고, 그것을 미술 작품에 적용해 삶에까지 끌고 오는 내용이 무척 쇼킹했다.


 나름 감정을 세분화시키고 구체화하는 데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마주하고는 마치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기분이 들며 ‘깨갱’하고 꼬리를 내리게 됐다.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의 자세에 입각하여 감정을 공부할 수 있게 해 준 ‘고수의 영역’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이 싫어서, 떠나고 나면 행복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