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태기'가 왔다, 그토록 사랑하던 글이 지겨워질 때
이름하여 글태기가 왔다. 글의 권태기. 그렇게 사랑하는 글쓰기였는데, 하얗게 빈 화면 앞에 앉는 일이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뜨겁던 연애가 식어버리고 부담되는 것처럼. 대체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글이 안 써지는 글쟁이의 애환을 글쟁이답게 글로 써보려 한다.
언니, 나 요즘 글이 안 써져서 미치겠어.
평소 글감을 나누는 언니에게 털어놓았다. 글 쓰는 것은 마치 강한 집중력을 요하는 운동과도 같은데 지금은 근력이 너무 손실돼서 글 운동을 재개할 수가 없는 느낌이라고 비유하며 말이다. 언니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용도의 글을 주로 쓰다 보니 고려할 게 많아져서 그런 거 아닐까?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쓰니 힘주지 않고 물 흐르듯 내 생각과 감정을 적어 내려갔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요즘은 한 줄을 써도 생각이 많다. 이렇게 쓰면 문장이 좀 어색한가? 내 의도가 잘 전달될까? 사람들이 이해하려나? 이 표현은 너무 초등생 일기장에나 어울리나? 촌스럽나? 온갖 생각이 머리를 지배해 키보드 위의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혼자 흥얼거릴 땐 잘만 불리던 노래가 카메라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내가 어떻게 카메라에 잡힐지, 목소리가 잘 녹음될지 등등의 걱정들로 한 소절도 안 불리는 것 같이 말이다. 그런 이유들로, 쓰기 시작했다가 생각에 잠식되어 중단된 글들은 창고에 쌓여 점점 부식되고 있다.
늘 숨 쉬듯이 평가당하고 평가하는 것이 우리의 일인데 아직도 그것이 익숙지 않은가 보다, 언니는 말했다. 그렇다고 나의 글들을 온전히 나만 볼 수 있도록 꽁꽁 숨겨 일기장에 묵혀두고 싶지는 않다. 나의 글을 읽고 깊게 생각에 잠겼다는 이야기나 아니면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비로소 내 글들이 제 할 일을 하고 있구나 뿌듯하고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이렇게 글이 안 써질 때면, 남들보다 더 두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패닉 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1. 힘 좀 빼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불특정 다수에게 내비쳐질 나의 모습을 의식하느라 글이 마비되는 일부터 줄여야겠다. 남들이 읽기에 '그럴싸한' 글을 쓰려 너무 힘주다 보면 나만의 색은 퇴색되고 누군가를 흉내내기만 한듯한 죽도 밥도 아닌 글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럴 땐 힘을 빼야 한다. 잠시 나만 볼 수 있는 잡글들을 굴러다니는 종이 쪼가리에 마음껏 발산하고 다 쓰고 지워버릴지언정 부끄러운 시들도 끄적여보고 공중파 뉴스 기자라도 된 듯 심각한 말들도 지껄여보고... 중요한 것은 글과 다시 마주하는 일. 다시 키보드와 흰 화면 앞에 앉아도 두렵지 않을 때까지 편하게 써보자. 편하게 쓴 만큼 나만의 색과 향이 강한 글의 조각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흩뿌려놓은 생각과 감상의 조각들은 나중에 잘 가공하면 예쁜 보석이 되기도 하고 그것을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꿰면 근사한 팔찌나 목걸이 같은 글이 되기도 한다.
2. 아는 것이 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접하다 보면 그것과 관련한 아이디어가 샘솟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풋 없이 아웃풋만을 바라는 것은 마치 공부 안 하고 백점 맞고 싶다는 소리와 같다. (이 글을 쓰며 셀프로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휴.) 그러니까 많이 읽고 많이 접하자. 전혀 생뚱맞은 것도 상관없다. 도롱뇽에 관한 기사도 좋고 이모티콘으로 시작해서 이모티콘으로 끝나는 블로그 글도 괜찮다. 음악도 좋다. 가끔은 좋아하는 음악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 수많은 깨달음과 영감을 주기도 한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보면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상의 조각을 마치 악상을 기록하는 작곡가처럼 이곳저곳에 남겨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개인적인 경험상 가장 좋았던 것은 고전 작품들이다. 유명하고 많이 읽힌 만큼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야가 넓어진다.
3. 자존심은 내려놓고 도움받기
대학생 때 3년 동안 교지편집부를 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피드백'이었다. 우리는 기사를 쓰고 나면 각자의 글을 프린트 해 동그랗게 둘러앉아 교정용 빨간 펜을 들고 서로 돌려가며 읽곤 했다. 한 바퀴 돌려 읽히고 난 글들은 온통 빨간 피칠갑을 하고(?) 각자의 앞에 나타나 내 마음도 덩달아 쓰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읽고 남긴 감상들이나 지적은 생각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다. 꼼꼼히 읽힌 나의 글에 대한 의견을 받는 일은 그때가 아니면 접하기 힘든 것이었고, 과하게 개인적인 견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만의 시야에 갇혀 깨닫지 못한 지점들을 꼬집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덕분에 나는 다면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은 졸업한 지 꽤 되어 교지 편집부원 활동 때처럼 다양한 의견을 받지는 못하지만 친한 친구들이나 글에 애정이 있는 이들에게 자문을 구하곤 한다. (낳아본 적은 없지만) 직접 낳은 것처럼 소중한 자식 같은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도 내 중심을 잃지 않으며 다른 이들의 견해를 수용하다 보면 훨씬 다채로운 글이 된다.
애인이 들으면 좀 서운해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글쓰기랑 이별하고 싶지 않다. 아니 어쩌면 평생 이별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이 힘겨운 '글 태기' 기간을 건강하게 이겨내야 할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방법대로 노력해볼게, 글쓰기야. 그러니까 우리 오래오래 연애하자.
아마 글쓰기와 연애 중인 사람들은 한 번씩 나처럼 글 태기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슬럼프가 오는 것은, 사실 우리가 글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글쓰기와 연애하지 않았더라면 글태기도 오지 않았을 테니! 그러니 글과 연애하던 초심을 잊지 말며 빠르게 관계 회복을 하기를 바란다. 당신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