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따려고 친구와 가까운 면허학원을 찾아갔다. 여름방학이라 면허 따러 온 대학생들로 북새통이었고 2개월 대기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친구는 대기 접수를, 참을성이 없던 나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왔다.
시간은 흘러, 잊고 있던 친구의 운전면허 합격 소식을 들었다. 부러움에 최대한 빨리 딸 수 있는 속성 운전 학원을 알아봤고, 2주 만에 면허증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회사 교통편이 좋지 않아 애를 먹었던 나는, 용기 내어 자가용도 계약했다. 차가 나온 날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미끈하게 빠진 차가 ‘어서 달려줘’ 손짓했지만, 운전 연수 10회 받아 본 게 다인 나는 초보 중에서도 완전 생초보였다. 직장이 있는 복잡한 강남길을 느릿느릿 거북 운전으로 출근했고 일이 끝나면 직장 후배에게 열심히 운전을 배웠다. 그렇게 생초보의 일주일이 흘렀다.
12월 31일, 월 말 마감 날이라 밤 11시쯤 일이 끝났다. 같은 방향 동료들이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초보라 겁이 났지만 차가 끊겼다는 그들을 모른척할 수 없었다. 3명의 동료를 동선에 따라 한 명씩 내려주기로 했다. 천호대교 북단을 지나 마지막 동료를 아차산역 사거리에내려주었다. 편하게 왔다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가려면 유턴해야 했다. 다음 사거리에서 하면 되지 싶어 직진했다. 그런데 유턴 금지 표지가 보였다. 다시 직진했다. 하지만 다음 사거리도 유턴 금지였다. 다음 사거리에도, 그다음 사거리에도.
P 턴 표시가 있었지만, 초보였던 그땐 P 턴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초록 불 신호 따라 직진만 했다. 핸들 잡은 손이 점점 떨려왔다. 심장이 벌렁대며 머리가 하얗게 됐다.
(네비가 없던 시절, 이러다 시트콤 누구처럼 북한까지 가는 거 아닌가 생각함 ^^)
그렇게 한참 1차로로 달리다 보니 왼쪽으로 굽어진 고가 도로에 이르렀고, 낭떠러지 같은 좁은 고가에서 마침내 눈물이 폭발했다.
(지금은 추억 저편으로 사라진 울분의 청계 고가.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보물섬)
미친 여자처럼 엉엉 울며 달렸다.
고가를 지나서야 이정표에 종로 5라는 글자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스톱할 줄 모르는 직진 본능 내 첫차는 12월 31일 보신각 타종을 듣고 싶었는지, 주인 맘도 모르는 채, 종로까지 그렇게 신이 나서 달렸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나온 많은 사람과 연인들을 뒤로한 채 드디어 발견한 유턴 표지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유턴했다.
그 날밤, 씻지도 못한 채 쓰러질 듯 잠이 들었고 잊지 못할 새해 아침을 맞이했다.
베테랑 운전자가 된 지금도 가끔 길을 잃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길을 잘 못 들었을 때나, 가다 아니다 싶을 때에는 유턴해도 된다는 것을. 우리 인생이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