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자유 Jan 07. 2023

응답하라 청춘이여. 3

h를 울린 짝퉁 농구화


여고 2학년이던 그때는 짝퉁이 판을 치던 시절이었다. 지금보다 가난한 시대였고, 대부분이 서민이었고, 브랜드보다 비메이커를 더 많이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시험 마지막 날엔 친구들과 동시 상영하는 삼류 극장에 가거나 동네 만화방에 갔다.

돈이 좀 생기면 지하철을 타고 시내 극장(단성사, 피카디리)이나 남대문 시장을 어슬렁댔다.



시험을 마치고 그날도 단짝 친구 세 명과 학교 앞 단골 떡볶이집에서 볶음밥까지 박박 긁어먹은 후 남대문시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어떤 아이템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줄 것인지 설렘으로 가득 찼다.


남대문 시장은 주머니 사정이 얄팍한 우리들에겐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한창 멋 내고 싶고 갖고 싶은 게 많은 나이, 남대문은 싸고 예쁜 물건이 많아서 돈이 좀 생겼다 싶으면 들르는 참새 방앗간이었다. 세상 별의별 짝퉁들이 다 모여 있어서 아이쇼핑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꺄~

웬욜~

대충 펴놓은 자리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갖가지 짝퉁 농구화들이 보였다.

나이스, 아디더스, 르까퍼, 프로를 뺀 그냥 스펙스...

이게 웬 떡! 내-복도 있었다.


당시,

이종원의 화려한 의자 춤사위로 남, 여학생은 물론 할머니 내-복 패러디까지 불러일으킬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리복은 비싸서 아무나 갖지 못하는 꿈의 농구화였다.


쥔장 아저씨는 손바닥과 발바닥을 현란한 박자에 맞춰 "발만 들어가면 무조건 천 원! 천 원!" 외쳤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앉아 가장 진퉁처럼 보이는 리복 농구화 고르느라 눈에 불을 켰다.

하지만, 사이즈가 없나, 있으면 불량이거나, 짝퉁 티가 너무 나거나, 그랬다.


대박 소득의 주인공은 h였다.




다음날,

당연히 내-복을 외치며 들어올 줄 알았던 h는 낡은 운동화 그대로였다. 모두 의아해 모여들어 물었다.


절망 섞인 h의 한마디...


"집에 와서 보니 쪽 발만 두 개였어!"




*응답하라 1988 이종원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 똥행패>

매거진의 이전글 응답하라 청춘이여.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