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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유 Jan 04. 2023

당신의 가장 가엾고 쓸쓸한  11월.

어머니의 뒷 모습

시아버지 기일이 있어 부안에 있는 산소에 다녀왔다.


시아버지께서 홀로 외로이 계신 그곳은, 시부모님 두 분이 5형제 힘들게 공부 가르쳐 독립시킨 뒤, 집 한 채와 땅 몇 마지기 장만하셔서 농사지으며 여생, 파 뿌리 될 때까지 서로 등 긁어주며 다정하게 살자 하신 곳이다.


내가 시집오기 전, 시아버지는 약주를 상당히 좋아하신 데다 사기도 많이 당하고 가정보다 바깥사람들을 더 챙겨서 어머니 속을 어지간히 섞인 모양이었는데 어느 날, 어떠한 계기였는지 그 좋아하던 약주도 다 끊고 가정적으로 변하면서 먼 곳에서 사는 5형제들이 부모님 걱정 덜 하고 살 게 됐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열흘만 있으믄 임자 귀빠진 날잉께 오일장에 다녀와야 쓰겄네. 나 혼자 언능 다녀 올랑께 나오지 마소.”


시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선물로 낡은 슬리퍼 대신 겨울에 신을 털신과 자식들이 오면 함께 먹을 식재료 장만하신다고 아침 수저 놓자마자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 장터로 향하셨다.


늦가을, 어스름한 아침 시골길을 찬 바람맞으며 부푼 가슴 안고 달렸을 아버지는 밤새도록 마신 음주운전 뺑소니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차디찬 논바닥에 방치된 채 한마디 인사도 못 하고 가신 아버지 사고에 어머니는 실신하셨고 몇 달을 앓아누우셨다.  혼자되신 어머니의 건강이 염려되어 시골집은 비워두고 안산 아주버님 댁에서 모시기로 했다.


시아버지 기일이면 온 가족이 산소에 간다. 기일은 어머니 생신 열흘 앞에 두고 있다.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려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는지 갖가지 음식을 차려놓은 산소 앞에서 먼 산만 보시는 어머니 넋이 한없이 가엾고 가엾다.


 “여보 임자, 나는 편안히 잘 있응께 당신 원망은 이제 그만 허고 삭신 아픈 데 없이 건강히 잘 있다 내 옆으로 오소.”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못다 한 인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맛있게 태우시는지 담배 한 개비가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타고 연신 발갛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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