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미'의 묘사, 대체 얼마나 예쁘다는겨?
* Head 이미지는 절대 본인의 취향이 아님을 밝힙니다. (물론 그렇다고 싫다는 건 아닙니다.)
일단 고해부터 하고 시작하자.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라고 외치고 다니지만, 나 역시 예쁜 여자를 보면 눈길이 오토매틱으로 따라가곤 한다. '그건 본능이다'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한 꺼풀 덮어두더라도, 사실...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해본 적은 딱히 없는 것 같다.
외모 이야기를 꺼낸 건 결코 뜬금포 갑툭튀가 아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를 '탐구생활'이라는 꼭지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려면, 솔직담백한 밑밥 하나 정도는 오픈해야 한다고 생각한 탓이다. 나름대로 논리적인 발단과 전개를 연결하려는 발악인 셈이라고 해두겠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예쁨'의 기준이란 건 제멋대로다. 흔히 '콩깍지'라 불리는 마술적 현상을 제쳐두고서라도 말이다. "저 여자 예쁘지 않냐?"는 당신의 말에 세상 모든 남자들이 동의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가까운 예로, 선호하는 걸그룹 멤버만 물어봐도 제각각이지 않던가.
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왔지만, 여전히 소설은 텍스트의 미학이라 부를 만하다. 그리고 바로 여기가 오늘 탐구(?)할 문제의 시작점이다. 소설의 가장 주된 요소가 텍스트라는 것.
소설을 읽다보면, 여성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대목이 심심찮게 나온다. 여신이나 천사, 경국지색 절세미녀의 재림 등 이미 무수한 예제가 존재한다. 아마 당신의 머릿속에도 하나쯤 떠오르는 표현이 있지 않을까. 어찌나 자주 등장하는지, 뻔한 표현을 피하려는 시도도 가지가지다. 대부분 실패한다는 게 문제지만...
가끔 인기가도를 달리던 일부 작품들의 경우, 책과는 별도로 인터넷 상에 캐릭터 일러스트가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당장 생각나는 예를 하나 들자면 판타지 소설 '가즈나이트 시리즈' 정도가 있겠다.) 하지만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사항이었으니 예외로 두고자 한다.
텍스트로 된 외모 묘사는 독자들에게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시하기 어렵다. 다양한 작품들을 많이 본 독자라면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하겠지만, 솔직히 별 감흥이 없을 가능성이 더 높다. 어제 보던 소설에서 여신을 영접하고 왔는데, 오늘도 여신이 나왔다면? 그저 '아... 또 엄청 예쁜 애 하나 나왔는갑다'라고 잠깐 생각하고 말거라는 얘기다.
그런 고로, 여기서 날카로운 척을 한 번 해보려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던 바로 그 부분에 관해서다. '예쁘다'고만 표현된 그 여자, 도대체 어떻게 생겼다고 이해해야 좋을까?
비교적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웹소설에서도 여전히 인물의 외모는 텍스트로 묘사되곤 한다. 그것이 미의 여신이든, 천하제일의 절색이든, 텍스트는 그저 텍스트일 뿐이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속 캐릭터가 아무리 예쁘다 해도 모니터 속 2D 그래픽에 지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뭔가 눈가가 촉촉해지는 듯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만나본 '소설미녀'가 얼추 수백을 헤아릴 때쯤이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파트의 '이 여자'와 실제로 마주하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녀'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오랫동안 두문불출하다보면 상상력이 급상승하는 법. 요즘은 그 기간이 좀 길어지다보니 망상변태가 되어가는 듯해 조심하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상상해보는 일의 재미는 포기하기 쉽지 않다. 아름다운 여성과 계속 엮이는 부러운 주인공(놈)의 이야기 속에, 나 자신을 대입해보는 것은 스토리를 몰입감 있게 즐기는 좋은 방법이니까.
최근에는 단행본보다 웹소설을 즐겨보곤 한다. 웹소설의 경우 플랫폼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과거에 비해 일러스트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어떤 플랫폼의 경우 아예 글 작가와 일러스트 작가를 따로 둬서 높은 퀄리티의 삽화를 제공하기도 한다.
훌륭한 삽화는 캐릭터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시각요소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동향을 고려하면 이는 분명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때도 있다. 앞서 말했던 '예쁨의 기준'이 제각각인 탓에, 어떤 독자에게는 영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는 거다.
눈으로 보고 감탄하고 싶으면서도, 막상 생각보다 안 예쁘면 괜히 글의 재미가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함. 이 미묘한 경계에 인간의 심리가 위치해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가설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랄까.
글로만 묘사된 작품을 놓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은 분명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괴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텍스트 뿐인 소설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내 마음대로 상상한 결과물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읽어가는 재미를 도무지 놓을 수가 없어서다.
오늘 읽던 소설의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나는 마음 속으로 미의 여신을 수없이 불러댔다. 부디 이 여주인공의 자리에 내 이상형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해주소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이야기의 영역에서조차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남아있다는 것 정도랄까. 뭐, 이런 글을 적고 있는 본인도 그 영향을 받고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니, '아쉽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바라건대, 당신의 소설 읽기 역시 늘 즐겁고 행복했으면 한다. 글 속에서 미의 정점을 찍은 캐릭터를 만난다면, 그 자리에 자신의 이상형을 떠올려 보라. 만약 그것만으로도 짜릿하거나 흥미로워질 수 있다면, 그 시간은 이미 행복해진 것이다. 당신만의 아프로디테가 어떤 모습일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기꺼이 '취향 존중'이라는 경의를 붙여드리도록 하겠다.
끝으로, 다 쓰고 보니 여성의 미에 관해서만 주절거려놓은 듯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남자인지라, 남자를 바라보는 미적 기준 따위 알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관심이 없는 것을...
만약 이 글을 읽는 여성분들이 있다면, 하릴없이 외로운 사내놈의 흔한 넋두리라 생각하고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시길. 아니면, 이 글 속 '여자'라는 단어를 '남자'로 바꿔보면서 읽으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