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 #5. 웅장한 전주곡(前奏曲)이 울렸다.

공부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소설을 만나다... 대작급 스케일, <프렐류드>

by 이글로

* Head 이미지는 <프렐류드> 작품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작품명 : 프렐류드(Prelude)

플랫폼 : 카카오스토리

매주 월, 목, 토 연재 중 (무료)


기꺼이 모방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저 인상 깊었던 몇몇 회차를 곱씹으며 메모장만 채워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언젠가는 이것들을 보란듯이 내 것으로 소화해주겠노라, 그렇게 다짐하면서.


놀라웠다. 한 인간의 시야가 이토록 폭넓을 수 있다니.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쉴새없이 넘나들지만, 어느 한 쪽이 다른 하나의 들러리로 보이지는 않았다. <프렐류드>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몇 번씩이나 대차게 흔들어놓았다. 짜내고 짜내 정성스레 쓰던 설정집에 빨간줄을 북북 그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부추겼다. 마치, '한참 더 공부하고 오라'며 놀림 받는 기분이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내 설정집을 볼 때마다 이런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에는 나름 소설을 즐겨 읽었었다. 대부분 유명한 문학작품보다는 마이너한 것들 위주였지만. (유명 작품은 학교 문학시간에 배우는 걸로도 넌덜머리가 났었지...) 어느 순간부터 소설 읽기를 멀리하게 됐던 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손발 오그라들도록 어리석었던 생각.


백수가 된 이후, 웹소설과 웹툰을 보다 집중적으로 접하게 됐다. 무엇보다 시간이 많았으니까. 그렇게 얻은 결론, 아직도 알야 할 것이 산더미라는 . 공부는 평생 하는 거라더니 그 말은 딱인 듯하다. 좀 더 일찍 깨우쳤다면 나도 관악산 기슭 학교나 아이비리그 같은 곳에 갈 수도 있었으려나......


<프렐류드>는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았음에도 두 번째 정주행을 하는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르는 개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메모해놓고, 그게 어느 정도 쌓이면 읽는 것을 멈추고 백과사전을 뒤졌다. 물론 모르고 넘어가도 내용을 즐기는데는 크게 걸리지 않는다. 다만 내 과도한 호기심이 빚어낸 노역일 뿐. 어쨌거나 첫 번째 감상에서는 작품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했었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지식들이 반 이상은 족히 되는 듯한데, 그것들을 가지고 풀어낸 스토리라니. 호기심, 자존심, 의욕의 3단 히트. 현재까지 나온 회차를 다 읽자마자 딱 하루를 쉬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한 번 읽었던 내용이 어렴풋이 오버랩되면서 점점 다른 느낌으로 번져간다. 이거야말로 '다른 시각', 그 자체가 아닐까.


읽다보면 이런걸 글로 설명해놓은 느낌이 들 때가 꽤 된다.


휘유... 거품을 물고 칭찬 릴레이를 펼쳤으니,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련다. 냉정하게 보면 단점이 없을리 없고, 그걸 무작정 덮는 건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 티끌만큼 남은 양심을 이런 데 쓰고 있다니...


맞춤법 같은 부분이야 둘째로 놓더라도, 디테일 부분에서 발견되는 오타가 제법 많다. 글자 그대로의 오타는 물론, 주술관계가 이상한 문장도 꽤 보인다. 아마 글을 써놓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생긴 거라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인물의 이름 표기가 틀리게 된 경우가 꽤 있어서 가끔 헷갈리기도 했을 지경이다.


개인적으로 텍스트를 볼 때면 이런 '미시적인 완성도'에 상당히 까다로워지는 편이다. (그래도 악플은 안 답니다...) 까다로워지지 않기로 매일 다짐하지만, 영 고깝게 보이는 건 습관이라는 불가항의 영역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커다란 뼈대를 이루는 '플롯(Plot)'이 평범하다는 것도 아쉽다. 천재적인 두뇌에 전투력까지 발군인 먼치킨형 주인공. 변수라곤 거의 없이 하는 일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렴하는 전개. 이 전체를 클리셰로 치부해버리는 게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긴장감을 이끌어가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이는 과거 몇 차례 습작 형태로 소설을 써볼 때도 늘 발목을 잡았던 부분이다. 그 반갑지 않은 사슬이 이 작품 친친 감겨 있음이 느껴진다. 묘한 동질감. 한편으론 아쉬움.


'익숙한 플롯'은 대개 족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함부로 벗어던지자니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전에비슷한 이야기를 한 바 있지만, 소설이란 곧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그 자체다. 한 사람이 세상 모든 것을 통찰하고 쥐락펴락할 수는 없는 법이기에, 타인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는 건 거의 대부분 멋진 경험일 수밖에 없다.


'요삼'이라는 필명. '임허규'라는 본명. 혹시나 싶어 포털에 검색을 한 번 해봤다. 오십대 가량의 푸근한 인상이 담긴 인터뷰 기사가 보인다. 한숨이 나왔다. 이 방대하고 넓은 식견을 가진 사람이 나와 비슷한 연배가 아니라는 것에 약간이나마 안도했달까.



<프렐류드>의 액션은 호쾌하고 속이 뻥 뚫리는 듯하다. 때로는 잔인한 장면 묘사도 있지만, 주요인물들의 언행은 대부분 시원시원하다. 지독히도 마음에 꽂혀 뭐라도 메모할 수밖에 없었던 대사는 어느새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게 됐다. 그 중 가장 마음을 울렸던, 딱 두 개를 선정해 이 자리에 적는다. 정말이지... 이상형 월드컵의 결승전을 고민하는 심정이었다.


"TS는 병들고, 늙어버렸어. 그래도 좋다고 웃고 떠들지.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무엇을 요구하는지, 게임의 규칙이 어떻게 변했는지 관심도 없어. 그저 안전빵으로 시시한 실적이나 챙기면서 어깨 힘 팍 주고 회사 돈이나 펑펑 쓰겠지. 세상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경험이 거의 쓸모가 없어졌는데도, 공부를 안 해." - <프렐류드> 81화, 이석준과 원하의 대화 中
"여러분이 그렇게 방심하고 있는 동안, 인문학의 자리에 신학이 다시 오게 되는 거야. 위대한 인간... 그 인간들도 빈틈을 보이면 신은 반드시 다시 온다. 아니면, 신이 되고 싶어하는 뭔가가 오겠지. 당신들, 대비는 되어 있나?" - <프렐류드> 107화, 최영숙의 강의 中


사실 <프렐류드>를 제대로 보자면, 같은 세계관을 다루고 있는 요삼 작가의 연작들을 함께 보는 편이 낫다. <양아치>, 그리고 <에뜨랑제>. 다만 유료이기에 '필독'이라 하기엔 다소 조심스럽다. 내 지갑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내 경우, <양아치>는 전권 구매해 읽었고, <에뜨랑제>는 아직 읽는 중이다.)


둘 중 특히 <양아치>는 <프렐류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더 먼저 출간됐지만 시간적 배경은 주인공인 유건의 20대 중후반 이야기로, 더 미래를 다루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인상 깊었던 대사 두 개만 꼽아봤다. 추후 따로 타이틀을 달아 좀 더 자세히 풀어볼 생각이다.


"인간은 말이죠.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이해했다고 할 수 없는 '불연속점'이고, 모든 방정식이 깨져버리는 특이점이라고요. 당신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 그게 존재 의미가 있는 겁니까? 저는 그런 국가 필요 없습니다."


어제, 아니 그제였던가. 주간지 시사인의 최근 호에 실린 영화 <베테랑> 평론을 읽다가 지극히 공감하는 부분을 발견했다.


'물론 <베테랑>의 해피엔딩은 판타지다. 이토록 멋지게 재벌의 악행을 단죄하는 일은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영화, 픽션의 힘이다.'


베테랑의 서도철(황정민 분)은 재벌이라는 거대한 존재와 싸워 '최소한의 정의'를 쟁취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그리고 그것을 가리켜 '픽션의 힘'이라 평했다.


<프렐류드>, <양아치>의 유은 어떨까. 그 거침없는 행보에서 나는 '최선의 정의'가 뭔지를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다. 이 또한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지만, 사회 비판의 강도는 더 거세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영화보다 영향력은 좁고 상상의 폭은 넓은 '장르소설'이라는 미디어이기가능한 일이 아닐까.


어쩌다보니 굉장히 건조한 감상이 되어버렸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도 차고넘치게 많지만, 이쯤에서 우선 쉼표를 찍어둔다. 두 번째 정주행을 마치면 다른 소재거리가 떠오를 듯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더 이상의 군더더기를 남겼다간 별로 좋은 꼴을 못볼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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