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tory #2. 말주변 없는 남자

재미없는 남자의 이야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네요.

by 이글로

그 사람은 언제나 그랬어요. 뭐랄까, 그다지 말주변이 좋질 않았다고 해야할까요. 음...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법을 아예 모르는 것 같았어요. '재미'라는 게 뭔지 이해를 못한다는 느낌?


매사 너무 진지했어요. 무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일에 순위를 매긴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꼭 들어갈걸요? 그 탓에 무슨 이야기를 꺼내도 심각하게 흘러가버려요. 가벼운 일상대화조차도 마치 토론이나 연구모임처럼 돼 버리죠.


평범했어요. 특별히 키가 크다거나,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었죠. 옷을 빼어나게 잘 갖춰 입는 것도 아니고, 음... 붙임성? 사회성? 그런 것도 별로... 아, 가끔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이것저것 아는 꽤 많은 것 같았어요. 본인 입으로 그렇게 이야기한 건 아닌데, 뭐랄까... 말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그런 느낌이 든달까요.


이상하게 흥미로웠어요. 이걸 뭐라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호감이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렇다고 싫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무관심하지는 않은 느낌이랄까요. 사람 마음이란 게 알다가도 모른다더니, 되게 복잡하네요. 그쵸?


그 사람,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것 같았어요. 츄리닝 차림으로 학교 근처 술집 거리를 어슬렁리는 것도 꽤 여러 번 봤고, 여럿이 모인 술자리에서도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편이었죠. 가까이서 볼 땐 몰랐는데, 진짜 덩치는 엄청 크더라고요.


성격 자체가 조용한 편인지, 대개 외지고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들을 좋아했어요. 어쩌다 조용히 있고 싶어서 괜찮은 곳을 찾다보면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한 번 인사를 건네봤어요. 제 이름, 정확히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자기만의 세계에 사는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네요, 이건. 그걸 계기로 가끔씩 마주치면 간단하게나마 대화를 하게 됐어요. 이야기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주제도 다양해졌죠. 다른 사람들에겐 여전히 같은 모습이었겠지만, 저한테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됐어요.


어느새 꽤 친해졌을 때(저만 그렇게 생각했었는지도 모르죠.), 꼭 물어보고 싶었던 그 말을 드디어 꺼냈어요. 늘 멍하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그때 그 표정,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별 시덥잖은 질문을 한다? 아니,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나? 아무튼 되게 인상깊은 눈초리였죠.


소설 비슷한 걸 구상하고 있어.


툭 내뱉듯이,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끝. 더 이상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의지가 엿보이는 표정. 참... 처음 볼때나 지금이나 말주변 없는 건 여전하네요. 이럴 땐 허세 한 번 부릴 법도 한데, 늘 예상 밖에 사는 사람이네요.


그 이후에도 몇 번씩 물어봤어요. 최대한 관심 없는 척 했지만, 어쨌거나 궁금하긴 했으니까. 근데, 너무 뻔히 보였나봐요. 물어보면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대충 얼버무리고 말더라고요. 이걸 뭐라고 해석해야되지...? 가만, 이 사람 혹시...


부끄러워 하는 거야...?


맙소사. 거기까진 생각해보지도 않았어요. 음... 부끄럽다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은 아닌데. 저 얼굴에, 저 덩치에? 이봐요. 그런 모습 진~짜 안 어울리거든요?


...

...

...


어느날 문득, 생각이 났어요. 그때 구상 중이라던 그 소설. 완성했을까? 아니, 일하느라 바쁘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으니, 아직 쓰고 있으려나... 카톡을 한 번 보내봤어요. 쿨한 척, 잘 지내느냐고. 그때 그 소설 어떻게 됐냐고.


몇 번 엎었어ㅋㅋ 제대로 시작도 못함.


으이그... 이 인간... 뭐, 전혀 예상 못했던 건 아니니까. 아이디어가 뭐냐고 줄기차게 물어보던 시절에도 뭘 쓰고 싶은 건지 스스로 분명하지가 않다고 그렇게 버티곤 했었거든요.


한참동안 주거니 받거니 톡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갔네요. 이제 준비가 거의 끝났다네요. 콘셉트도 잡았고 캐릭터 설정이랑 시나리오 구성도 다듬는 중이래요. 귀띔 좀 해달랬더니 역시 안 해주네요. 비싼 척은......


그래도 솔직히 기대가 돼요. 말주변이라곤 병아리 눈물만큼이나 찾아보기 힘들었던 사람. 어쩌다가 가까워지게 됐고, 의외의 면도 많이 보게 됐죠. 그렇게 오랫동안 쓰고싶다고 노래를 부르며 준비하던 거니까, 이 정도 기대는 미리 하고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