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 길을 따르는 서생 이야기, <낙향문사전>
작품명 : 낙향문사전
플랫폼 : 네이버북스
매주 화, 토 연재 중 (무료)
세상에 났으면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야지!
어린 시절 종종 듣던 이야기다. 꿈은 크게 가져야한다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라고, 온갖 긍정적인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살던 나날들. 그런 환경 속에서 내 꿈은 나도 모르게 무럭무럭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현실'이라는 녀석을 직접 겪었다. 갓 대학에 입학한 풋내기가 서울로 향하며 품었던 꿈들은, 아마 세상물정 모르는 나이였기에 가능한 치기였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저 크기만 한 꿈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걸, 촘촘히 짜여진 계획 없이는 그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게 됐다. 당장 인터넷만 뒤져도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 비록 시행착오를 거칠지언정, 일단 무작정 들이받고 보는 '똘끼'도 어느 정도는 필요했나보다.
꼭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할까?
누군가의 길을 함께 걷는 건 안 될까?
<낙향문사전>이라는 웹소설이 의미있게 다가왔던 건, '나의 길'을 개척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시기를 보내고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의 원대한 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그 여정을 함께 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시작점. 물론 내 인생이 걸려있기에, 그리 '쿨하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현천의 무제. 이름만 놓고 봐도 거창하고도 비범한 기운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무척 강해보이기도 하고.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무협 소설이었다면, 기꺼이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도 남았을 법하다. 그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바로 그 설정이 이 소설에 흥미를 갖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관리가 되기를 꿈꾸던 평범한 청년과 생사결을 준비하는 무림인. 현대로 치자면 고시생과 격투기 챔피언쯤 되려나... 아무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에는 분명하다. 주막에서 마주친 두 사람. 자신의 '길'을 기록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밑도끝도 없는 수상한 주문. 어른들은 언제나 수상한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지만, 이 '많이 배운 놈'께서는 끝내 그 말씀을 안 듣는다. 두 사람의 기묘한 동행은 아리송하기 그지없는 접점으로부터 시작한다.
무협소설 주인공인데 낙방서생? 뿔테안경 쓴 범생이가 액션 영화 주인공이라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무엇보다 서생이라 함은 '무력'이라는 영역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가.
문득 꽤 어린 시절에 읽었던 걸로 기억하는 <묵향>과 같은 소설을 떠올려봤다. 그 시절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강했다. 화경이니, 현경이니 하는 비현실적인 경지는 언제나 그들의 몫이었다. 그러다보니 '주인공은 강해야 한다'는 설정은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강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전개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종류의 고정관념이 내 머릿 속에 얼마나 진득하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깨달았을 때, 마치 세뇌라도 당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것이 작품의 다양성에 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그머니 몸서리가 쳐진다.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낙향문사전>의 작가 또한 그 '세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나보다. 평범한 선비에 불과했던 주인공이 어느 순간부터 희대의 고수들을 일검에 꺾어버리는 무용을 발휘하게 됐으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거다. 극강의 무공이나 초식 따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몸을 맡긴다'는 마음가짐. 웬 무협소설이 이리도 철학적이란 말인가!
무제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타인의 이상을 따라가되,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이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다. 모두가 자신의 이상을 좇으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소설 속 무림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도 예외는 없었다. 그 와중에 움켜쥐려 하기보다 순리대로 놔두고자 하는 인물. 수상한 사람 따라나섰던 말 안 듣는 서생은 어느새 숭고한 철학을 지닌 무림계의 선각자가 되어있었다.
납치되다시피 동행길에 올랐다가 어느새 그 사람의 뜻을 이해하게 되어버린 주인공. '스톡홀름 신드롬'을 조금 비틀고 무협버전 스킨을 씌우면 이런 모습이 나오려나. 뭐 어쨌거나, 이 남자는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무에서 새로운 것을 일궈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신념대로 선택한 것이니 이 또한 '개척'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덤으로 갖가지 매력을 가진 미녀들도 주위에 몰려들게 됐으니, 그것도 충분히 멋진 삶이 아니겠는가! (젠장, 소설 주인공인데 부럽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