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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na Be: 생각이 날아다니는 사람

어차피 생각 많게 태어난 거, 기왕이면 생각이 날아다녔으면 좋겠다

by 이글로

2011년 출간된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이후로 김정운 박사의 책을 종종 챙겨 읽는다. 당시 제목도 그렇고, 생각하는 방식도 그렇고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최근 출간작인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읽은 후, 계속 뇌리를 맴도는 문구가 하나 있었다.



생각이 날아다닌다.



예상하건대, 김정운 박사는 이 표현에 꽤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 표현을 쓸 때마다 그의 문체에서 매우 우호적인 태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 어쩌면 그 부분을 읽던 나 역시 마음에 들어하는 표현이기에 더욱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이어령 선생을 묘사할 때 이 표현을 꼭 쓴다. '생각이 날아다닌다'는 것. 그건 발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통의 사고 방식으로는 종잡을 수 없는, 극도의 자유로운 사고 방식. 김정운 박사가 정의하는 '창의력'의 본질이 이 표현 안에 담겨 있다.



생각이 날아다니다. 언뜻 들으면 참 멋있는 말이다. 자유로움, 비범함 같은 수식어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니 '양날의 검'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예리하게 벼려진 양날의 검, 특히 '요즘 시대의 글쟁이'로 살아가고자 하는 나 같은 이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왜 그럴까? 정보가 쌓이다 못해 줄줄 흘러 넘치는 시대. 어떤 것들은 '정보'라는 표현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다. 글 역시 정보의 한 갈래에 속한다. 현실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더 많은 사람에게 뭔가 의미를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치를 인정 받으니까.


그러다 보니 글쓰기는, '어떤 주제를 얼마나 짜임새 있게 녹여내는가'가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됐다. '잘 쓴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려봤다. 명확한 주제를 엿볼 수 있는 글, 처음부터 끝까지 흡입력 있게 구성된 글, 핵심은 명확하고 군더더기는 가급적 없는 글…… 누군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법으로 적어놓은 건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그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왔다.


그래서일까. 한 편 한 편 완성하지 못한 글이 서랍 속에, 노트 안에 쌓여갈 때마다 못내 부담스럽다. 이 글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시기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좀 더 가벼운 글도 쓰고 싶다. 빨래나 설거지를 하다가도, 거실에 누워 TV를 보다가도, 잠을 청하기 위해 누웠다가도, 불현듯 스쳐가는 아이디어는 너무 많다. 그것들로부터 뻗어나간 자유로운 공상들을 짤막하게 글로 옮기고 싶을 때가 무척 많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멈칫하며 스스로 묻게 된다.



난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걸까?



주제와 결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출발점부터 결승점까지를 꿰뚫는 하나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고. 어떤 소재를 쓰든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으면 군더더기가 될 뿐이라고. 그렇게 배웠고,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왔다. 그렇게 스스로 내 생각에 담벼락을 쌓아 올렸다.


책에서 읽은 단 한 마디 문구로부터, 그 벽을 허물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됐다. 특별히 거창한 주제 없이도,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를 생각해봤다. 강연이나 면접처럼 어떤 목적을 띠는 것이 있는가 하면, 동네 친구와 술 한 잔 기울이며 낄낄대는 시시콜콜한 잡담도 있다. 둘 다 나름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글 역시 그런 구분이 필요하다.


생각의 흐름이란 결국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떠올릴지는 각자의 자유에 달린 일. 그걸 글로 옮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이 어느 누군가에게 닿아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 해도 상관 없다. 그저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썼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니까.



이거, 결론이 뭐야?



글을 읽을 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결론을 중요시한다. 그건 보상심리라고 본다. 자신이 그 글을 읽는데 투자한 시간에 적합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보상이 없거나 성에 차지 않으면 분노한다.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셈이니까. 대중을 상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글쟁이를 비롯한 콘텐츠 제작자의 본능이다.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쓰는 일은, 확실히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글머리로부터 활주를 시작한 생각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곳으로 날아가려 한다. 이 와중에 처음 했던 생각의 결론을 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속박이요 감옥일 수밖에. 던져놓은 이야깃거리들로부터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끌어내는 건 독자들에게 맡기고, 난 또 어딘가로 훌쩍 날아가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상호작용할 수 있는 텍스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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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또 한 번 느낀다. 난 여전히 '결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 쓴 이 글도 마찬가지다. 아직 내 생각은, 자유롭게 날아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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