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 대회도 있는 마당에...
금요일 밤 언젠가. 채널을 마구잡이로 돌리던 어느 날이었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가수 크러쉬가 '멍 때리기 대회'에 출전하는 모습을 봤다. 주어진 시간 동안 멍~한 상태에서 가장 안정적인 심박수를 유지한 참가자에게 상을 주는 이색대회. 참가하는 것 자체로 의의를 두고자 했던 크러쉬는, 예상 외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자신이 멍 때리기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멍 때리기 대회는 소위 말하는 '인생 낭비'라는 트렌드를 대변한다. 표현이 좀 자극적이긴 하지만… 그 속뜻은 너무도 치열하게만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을 되돌아보자는, 일종의 해학諧謔이자 풍자諷刺일 것이다. 단 한 번의 실수, 단 한순간의 방심 때문에 영원히 뒤처져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극도의 불안감. 당장 내 주위만 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슷한 종류의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듯하다. 그로 인해 어떤 이들은, 온당한 휴식조차 사치스러운 일인양 세뇌된 채 살아가기도 한다.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양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 또한 그러한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작년 3월 말을 끝으로 근 3년 간 다녔던 첫 직장을 그만뒀고, 이후 새로 옮겼던 직장은 딱 두 달을 '겨우 버티고' 백기를 들었다. 작년 7월부터 시작된 프리랜서(라고 쓰고 백수라고 읽는) 생활도 어언 1년을 넘어섰다.
운이 좋아 짤막한 일거리 몇 개를 건졌고, 덕분에 수입이 전혀 없는 달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당연히 예전에 비해 지갑은 얇을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지출 하나도 좀 더 꼼꼼히 따지게 되고, 정기적으로 결제되던 비용도 모조리 점검해 불필요한 것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제법 살만해졌다. 다행스럽게도.
과거 언젠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히트를 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미용실에 들렀다가 기다리는 동안 어느 잡지에서인가 김지운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의 말 중 기억하는 한 마디, "돈이 없어서 불편하긴 했지만 힘들지는 않았고, 평생 백수로 살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엔 별 공감이 가지 않았던 그 말이 왜 불현듯 생각났던 걸까. 아마 요즘 이런 생활을 하고 있기에 기억의 다락방 어딘가에서 눈에 띄었던 게 아닐까. 지금 내가 딱, 불편하긴 하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은 상황이니까. (물론 내 경우 평생 백수로 살 생각은 없지만…)
요일에 얽매이지 않는(?) 자의 장점이란, 하루의 시작이 대개 홀가분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눈을 뜨자마자 무기력감부터 밀려오는 날이 있다. 몸은 편한데, 마음이 영 불편한 날. 뭔가 무의미한 챗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 같다는 공허함. 그런 날이면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지고 꽤 늦은 시간까지 이불을 둘둘 만 채로 이리저리 굴러다니곤 한다.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특별한 일 없이 일부러 밖에 나간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고려해 몰골을 다듬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할 일도 없는데 어디 가서 뭘 하지?'라는 종류의 시니컬한 귀차니즘. 할 일이 없다는 걸 뻔히 알고서 나왔지만, 정말 딱히 갈만한 곳이 생각나지 않으면 괜스레 짜증이 치민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 이유 없이 나왔다가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책을 읽거나 이런 영양가 부족한 글을 끄적이기도 하고, 돈은 안 되더라도 재밌는 뭔가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하며 논다. (이럴 때는 비싼 축에 드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오히려 고맙다. 몇 시간씩 뭉개고 앉아 있어도 양심이 반응하지 않으니까.)
그럴 때면 불편했던 마음은 싸그리 사라진다. 오히려 "놀 수 있을 때 놀아야지."라는 뻔뻔한 생각으로 멘탈에 철갑을 두른다. 난 지금 쉬고 있을 뿐이지,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돌이켜보면, 부끄럽고 못내 후회스러운 글도 많다. 워낙에 생각이 많은 성격이다 보니, 어느날 문득 떠오른 단상斷想 하나로 구구절절 이야기를 적을 수는 있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해 며칠, 몇 주씩 묵혀두는 때가 많다. 어떤 것은 몇 달씩 묵혔다가 문득 다시 봤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스스로도 모르겠어서 그냥 삭제해버릴 때도 있다. 차마 지우기 아까워서 작가의 서랍에 쌓아뒀던, 미련만 남은 글조각들 덕분에 어쩌다 작가의 서랍을 들여다 보면 스크롤이 한없이 내려가는 모습에 질려버리고 만다.
그 단계를 넘어 간신히 발행에 성공하더라도 모니터링은 계속 된다. 모두가 볼 수 있게끔 된 뒤에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는 부족함. '생각이 짧았구나' 하는 자괴감에 손톱을 물어뜯거나 이불을 걷어찬 경험도 꽤 많다. 기자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퇴직 후 운 좋게 연이 닿아 썼던 글들 중 어떤 것은 댓글 중 90% 이상이 욕과 비난으로 채워진 적도 있다. (이 개별 사례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묶어서 써볼까 생각 중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차원에서……)
글 쓰는 일로 먹고 살겠다고 다짐해놓고, 자존감이 산산이 무너져내리던, 정녕 이게 내 길이 맞는지를 의심했던 날은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다. 너무 예민하고 허약한, 글쟁이의 길을 걷기에 부적절한 멘탈을 갖고 태어난 건 아닌지 고민하며 보냈던 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또 괜찮아진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어도 멘탈 기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인 이상 실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다. 음… 같은 실수를 또 하지만 않으면 된다지만, 따져보면 두 번 세 번 반복한 실수도 없지는 않다. 다만 그때마다 얻은 경험을 토대로 조금씩 더 '업그레이드' 되는, 그 과정 자체가 인생이다.
오늘도 나는 카페에 앉아 게으른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들을 헛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그동안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고, 좀 불편하긴 하지만 제때 밥 잘 먹고 잠 잘 자며 산다. 헐벗지도 않고 비바람 맞으며 살지도 않는다. 지금 난 그냥, 쉬고 있을 뿐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 혹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나와 비슷한 길을 찾아나선 사람들. 더 나아가 생각은 하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다들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봤으면 한다. 우리는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고, 그렇기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자격도 있다. 한도 끝도 없이 확 퍼져버리면 곤란하겠지만, 삶의 모든 순간순간에서 어떤 거창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는 말자는 거다.
우리네 삶은 하나의 장편소설일 수도,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장대한 악곡일 수도 있다. 혹은 형형색색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300호짜리 이상의 커다란 그림일 수도 있다.
그 안에 담긴 글자 하나하나, 음표 하나하나, 붓터치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별로 화려하거나 멋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들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훌륭한 작품의 면모가 슬슬 보이게 된다. 설령 모두가 박수를 보내는 훌륭한 작품이 아니면 또 어떤가.
모든 순간이 꼭 의미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흘려보내고 있는 어떤 시간이 영 불안하다면, 스스로 합리화시킨 의미를 부여하면 그만이다. 내 시간에 부여하는 나만의 의미는 누가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 없는 거니까. (그래도 이해해주시면 더 좋긴 합니다.)
요즘 내 자존감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예전에 없던 뻔뻔함도 꽤 생겼다. 툭하면 깨지는 멘탈은 여전하지만, 그건 선천적인 재질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그냥 과거에 비해 빨리 회복되는 정도로 만족하련다.
몸은 더없이 편한 와중에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지, 머릿속으로 그 밑그림을 몇 번이고 그렸다 지운다. 약간 다른 의미로 바쁜, 요즘의 나날이야말로 감히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최고의 망중한忙中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