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득이 공개적으로 전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 먼저, 일방적으로 이 글을 쓰게 된 점에 대해 당사자께 양해의 뜻을 밝힙니다. 꼭 전하고 싶은 내용이었는데, 이것밖에 방법이 없어 본래 계획했던 내용을 조금 바꿔 글을 적습니다.
이 양해의 말조차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한 것이기에 성에 차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 나을 거라고 믿으며 이 글을 씁니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당사자께서는 분명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최근 썼던 글을 통해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의 2015년 저서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갑질 공화국의 비밀>을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오늘, 그러니까 이 글을 쓰기 약 1시간 쯤 전에 첫 번째 완독을 끝냈다.
그 중 거의 끝 부분의 한 파트를 읽으며 늘 내가 쓰는 글의 의도까지 읽으려 노력해주는 한 사람이 문득 생각났다. 아울러 그가 최근까지 연재했던 글의 주제도 떠올랐다. 그 사람에게 이 내용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단행본으로 판매되는 책의 내용을 공개적인 곳에 무단으로 옮길 수는 없는 노릇. 방법을 생각해보다가, 바로 얼마 전 그가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공개했던 적이 있음을 떠올렸다. 그리로 보내면 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노트북을 켰는데, 이런… 한 발 늦었다. 메일 주소를 다시 지웠나보다.
그래서 부득이 이 글을 쓴다. 본래 메일로 쓰려던 것을 공개적인 포맷으로 쓰게 된 만큼, 급하게 내용도 새롭게 정리했다. 당연히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방향이 많이 달라지게 됐다.
음… 만약 나와 그 사람을 동시에 구독하는 분이 본다면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챌 수도 있겠지만…(벌써 알아챌 것 같은 분이 생각난다는 건 함정) 그것까지는 불가항력이다. 최대한 본인만 알아챌 수 있도록 신경 써가며 적고, 혹시 알아채더라도 그냥 모른 체 해주십사 당부의 뜻을 남기는 수밖에.
그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던 내용의 일부분만을 인용 형식으로 옮긴다. 앞뒤 맥락과 내용 중간중간을 잘라낸 관계로, 원문에 담긴 저자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죽은 자만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실패자도 말이 없는 법이다. 실패자는 찾기 어렵다. 실패 사례를 애써 찾아낸다 해도 성공 사례를 더 많이 접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연구자들도 실패 사례는 기록이 없거나 빈약한 반면, 성공 사례는 풍부한 기록이 남아 있으므로 본의 아니게 성공 사례를 일반화하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언론도 '성공 미담' 위주의 기사를 양산해내는데, 이 또한 기사의 흥미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실패 사례'를 찾기가 어려운 탓도 있다. 실패를 한 사람이 뭐가 좋다고 자신이 나서서 "왜 나는 실패를 했는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겠는가 말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네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지금의 실패는 언젠가 다가올 성공의 밑거름이라고 호기롭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별히 그런 목적이 없더라도,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실패하고 좌절했는지를 고백하는 일은 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을 전하고픈 사람은 정말 용감했고, 그만큼 내게 꽤나 깊은 울림을 남겼다. 누군가는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삶의 조각조각에서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꼭꼭 감추려고만 했던 치부를 드러내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두세 개 정도의 글을 써놓은 지금도 망설임이 남아, 다음 편 쓰기를 계속 미루고는 있지만.
누군가가 실패를 경험한 이야기는 과열된 경쟁 구도에 지쳐있는 이에게 작은 위안이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구나.' 하는. 그런 점에서는 성공담보다 실패담이 훨씬 유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작은 위로에 과하게 취해버리지 않도록 하는 균형감각도 필요하겠지만.
그 사람은 이미 꽤 많은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지만, 나는 나대로 그가 썼던 실패 사례들을 알릴 더 많은 기회를 찾아보려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실패 사례도 더 많이 돌아볼 기회도 만들어보려 한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최소한 해를 끼치는 일만 없어도 좋겠다.)
사람은 제각각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며 자란다. 요즘 스스로도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에, 사람을 더욱 조심스럽게 대해야겠다는 반성을 거듭하는 이유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건, 나와 다른 이야깃거리를 그만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 아울러 그만큼 나와 더 많이 다른 사람이라는 뜻과 같으니까.
살아가면서 겪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알아가기 위한 좋은 창구. 그 이야기들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이미 인간적으로 충분히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나는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자주, 더 거리낌 없이 나눠져야 한다고 믿는다.
세상 모든 이야기를 성공 또는 실패의 이분법으로 저울질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굳이 둘로 나눈다면 실패의 스토리 쪽에 올라갈 추가 더 많고 더 무거울 것이다. 삶이라는 건 원래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은 법이고, 그걸 바탕으로 '자신만의 성공'을 견고하게 쌓아나가는 법이니까. 모르긴 몰라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그래서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패했음을 인정할 때 더욱 나은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실패의 경험'이 지금보다 더 후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아울러 그 사람이 전해준 소중한 실패담도, 앞으로 내가 되새기고자 하는 실패담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치있는 이야기가 되어가길 바란다.
본의 아니게 이 글의 주인공이 되신 그 분께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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