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간을 채워왔으니, 각자의 추억도 다를 수밖에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이하 슈가맨)이 틀을 벗어나는 시도를 선보였다. 일명 복원 슈가맨 특집.
그 동안 유지해오던 '슈가맨 두 팀 소환 + 쇼맨 편곡 버전 대결'의 프레임을 벗어난 변칙 공격. 무려 네 팀의 슈가맨이 등장한다기에, 최근 다른 예능에서 시도하고 있는 '2주 1회 편성'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기존과 달리 편곡 무대 없이 슈가맨 본연의 무대만 선보임으로써, 정형화돼 가던 구성에 변화를 줬다. 덕분에 <슈가맨> 본연의 취지가 더욱 부각됐다는 느낌. 무척 만족스러운 회차였다.
즐겁게 방송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슈가맨>과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이하 불후의 명곡)은 모두 '추억'을 키워드로 하는 프로그램. 하지만 내 경우, <슈가맨>은 취향저격 프로그램으로 점찍어두고 챙겨보지만 <불후의 명곡>은 방송 초창기 몇 번 본 이후로는 거의 보지 않는다.
여기에 어떤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슈가맨>의 방송시간은 화요일 오후 11시. 본래 나는 어릴 적부터 신데렐라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다. 나이를 먹으며 새벽을 넘길 수 있는 능력이 탑재됐고, 덕분에 요즘은 거의 매일 새벽작업을 하지만, 여전히 그리 오래 버티는 편은 못 된다. 이런 바이오리듬 덕분에 11시에 시작해 자정을 넘겨 끝나는 프로그램은 사실 다소 부담스러운 편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슈가맨>은 늘 본 방송을 챙겨본다.
<불후의 명곡>은 반대다. 토요일 오후 6시라는, 내 바이오리듬으로는 무척 여유로운 때에 방송됨에도 불구하고 본 방송을 거의 안 본다. 약속 없이 집에 있을 때에도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게임을 하지, 그 시간대에 TV를 보는 일은 많지 않다. 가끔 인터넷으로 편성표와 예고편 등을 찾아보고 시청여부를 결정하는 정도.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똑같이 추억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이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시간'에 있지 않나 싶다. <슈가맨>에서는 대개 1990년대~2000년대에 걸친, 딱 내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때의 노래들이 주로 나온다. 하지만 <불후의 명곡>에서는 그보다 이전을 겨냥한다. 가깝게는 대여섯 살 차이 나는 분들부터, 멀게는 내 부모님보다 윗줄의 연령대 분들이 기억하는 가수와 노래들을 다룰 때가 많다.
물론 여기에는 '성급한 일반화 맛'이 약간 함유돼 있음을 인정한다.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아 듣고 즐기는 데에 나이 제한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법. 실제로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노래를 즐겨 듣는 사람도 많고, 대개 중년이라 불리는 연령에도 아이돌의 최신곡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연령대를 기준으로 한 편 가르기가 아닌, '개취'(개인 취향)의 문제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슈가맨>이 내 취향저격 프로그램이 된 것은, 그들이 내가 추억하고픈 명곡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불후의 명곡>을 즐겨 보지 않는 건, 그들이 내 추억에 없는 장면을 주로 보여주기 때문일 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반대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둘 다 취향저격일 수도, 반대로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명곡을 결정하는 주체도, 추억을 만드는 주체도 결국 사람이니까.
어차피 세상은 무수한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하루 24시간, 일주일 168시간 중 겨우 한 조각을 차지하는 예능 프로그램일 뿐이라도, 세상의 다양성은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자기자신의 추억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나와는 다른 시간의 기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