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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이제서야 소리내 말합니다. 4월 16일, 그 날을 꼭꼭 새기겠노라고.

by 이글로

한 마디 말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그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기에.


펜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글. 너무 쉬운 표현수단이기에 오히려 뭔가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잘 모른 채 쓴 몇 글자가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차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겁쟁이였고, 비겁했습니다. 강남역 앞 칼바람이 불던 어느 날,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 세찬 바람 소리에 묻히던 목소리로 끊임없이 외치던 사람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고작 종이 위에 서명 하나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나 사는 일이 더 급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끝없이 합리화하며 지냈습니다.


압니다. 무슨 말로도 변명일 뿐이라는 걸. 압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걸. 꾸준히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 속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니까, 사람의 일에, 사람답게 반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2년입니다. 그 시간을 뻔뻔하게 흘려보내는 동안 쌓였던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어, 알량한 한 마디 적어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마음을 감히 이해하는 척, 공감하는 척하는 걸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죠.


그래도, 말해야겠습니다. 그 동안 묵묵히 입을 닫고 지냈던 건 분명 잘못이었다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했어야 했던 거라고. 수십 번 수백 번을 다듬어도 결코 완전한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이제라도 내가 그 마음을 거들고자 한다고. 투박한 한 마디라도 보태봅니다.


아직도 나는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고작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지, 또 무슨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몇 번이고 망설인 끝에 겨우 적어내려갑니다. 다만 한 가지, 상처 위에 더는 피눈물이 멍울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부디 이 작은 한 마디가 그런 '합리적인 세상'에 돌 하나라도 쌓아올리는 선택이었기를. 행동으로 옮길 용기는 아직도 부족해, 못내 짧은 몇 마디 말로나마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이제서야 고백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비겁하게 침묵을 지켰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이 한 목소리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저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거짓말에 속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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