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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그래요, 난 혼자가 편해요."

'혼자 노는 것'이 더 편하다? 이상한 게 아닙니다.

by 이글로
혼자가 편한 사람들.JPG


최근까지 공들여 읽었던 책이다. 리디북스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제목이 확 끌렸다고 할까. 그동안 쌓인 포인트가 제법 있기에 몽땅 부어 사버렸다. 무작정 지르고 나서 찾아보니 올해 초에 나온 제법 따끈따끈한 녀석이다. 평점도 꽤 높았고. 책을 고를 때 딱히 평점을 신경 쓰는 편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높은 게 좋긴 하다.






한때 서점에 가보면 자기계발에 관한 책이 빼곡하게 자리잡았던 적이 있다. 인터넷을 둘러보면 리스티클Listicle이 봇물 터지듯 보이던 적도 있었다. 그들의 전성기(?) 때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뜸해졌지만, 여전히 자기계발서나 리스티클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눈에 띄곤 한다.


이들을 들춰보면 다들 저마다의 내용이 있긴 하지만, 크게 보면 주로 적극적, 쾌활함, 부지런함과 같은 것들을 강조하곤 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삶의 자세이며, 반드시 지향해야 할 진리인 것처럼. 혼자만의 세계에 주로 머무는 나로서는 참 껄끄럽고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방콕과 혼자놀기, 공상. 나는 진정 저것들이 즐거워서 하고 있는 건데, 마치 잘못 살고 있는 거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하기도 했고.



그럴 필요가 없다. 그게 본능이다.



<혼자가 편한 사람들>의 저자, 도리스 메르틴은 초장부터 이와 같이 단언한다. 언뜻 보면 흔한 자기계발서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이 책을 끝까지 읽고 싶어지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은 바로 '내향인內向人'. 글자 그대로 보자면 '안쪽을 향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흔히 말하는 '내성적인 사람'과 유사한 개념이다. 즉, '정적靜的인 성향'을 본능적으로 타고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세상에 내향인은 꽤 많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세 명 중 한 명은 내향성을 타고난다고 할 정도. 물론 인간의 성격이란 딱 부러지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다만 대략적으로 나눠봤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


map_algorithms_spmf_data_mining095.png 사람의 성격이란 건 원래 복잡하기 짝이 없는 알고리즘과 같은 법 (※ 이미지 속 도식은 글 내용과 무관합니다 ^^;)


'자기자신의 안쪽을 향하는' 것을 본능으로 지닌 사람들…… 대략 세 사람 중 한 명 꼴……



잠깐, 그렇게 많다고?



나는 극도의 내향적 본성을 타고 났다. 생긴 건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지만… 뭐, 타고난 내 본능은 내가 제일 잘 아는 법. 시끌벅적한 자리에서 피로를 느끼고,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주목 받으며 말하는 건 그야말로 고역이다.


낯가림이 꽤 심해 인맥이 좁고, 친해진 사람들 위주로 어울리려 하는 성격. 별로 안 친하거나 모르는 사람이 많은 자리에 가면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입 닫고 듣기만 하는 성격. 리액션도 잘 하지 못해 존재감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성격.


객관적으로 내 성격이 썩 원만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했기에, 지금껏 나는 스스로 '매우 비주류인' 그룹에 속할 거라 여기며 살았었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또 있긴 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은 했다. 그런데 어쩌면 가까운 주위에 있을지도 모른다니…… 뭐랄까. 세상이 좀 다르게 보이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런 사람들이 꽤 많다는 책 속 문장에 용기를 얻어 한 마디 덧붙이자면, 자기계발서의 조언대로 성격을 고쳐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음…… 잘 안 되더라. 안 그런 척 가면을 쓰는 것까지야 어떻게든 됐지만, 수십 년 간 촘촘히 쌓여온 본성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maxresdefault.jpg 몇 년 간 지킬 앤 하이드 같은 기분으로 살기도 했었지… (아련)


생각해보면 그렇다. 우리 사회에 끼얹어져 오랫동안 스며든 분위기 속에서, 내향적인 사람이 드러내고 자리잡기란…… 쉽지 않다. 정말 쉽지 않다. 때로는 제대로 관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편견을 마주한다. 대인관계에 서툴거나, 성격이 까다로울 거라는 식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있다는 뜻.


아마 이러한 모종의 이유들로 인해, 내향성을 타고난 이들은 스스로를 더욱 감추기 급급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주변에 '혹시?' 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하하, 그러고 보니 내향성을 타고난 게 무슨 죽을 죄라도 된 것처럼 살았었다.


어차피 안 그런 척 연기만 잘하면 내 입으로 말하지 않는 이상 내 본성을 '들킬' 일은 없다.


그런 생각으로 가면을 뒤집어 쓴 채 낮 시간을 보냈다. 그 덕에 하루가 끝날 시간이 되면 유독 더 지쳐버린 심신을 다독이는 날도 꽤 많았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흔하다? 바로 내 주위에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사회생활을 하던 몇 년 간 좀 나아졌나 싶었지만, 본능은 어디 가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혼자 있을 때 제일 편하고, 불 꺼진 방에서 혼자 멍하니 누워 있을 때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회복되는 타입의 인간이다. 이게 정말 잘하고 있는 짓인지, 꽤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주제. <혼자가 편한 사람들>은 그 답을 얻기 위한 조언을 한가득 떠넣어 준 책이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사람의 성격이라는 건 딱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다. 세부적인 상황에 따른 반응이나 대처는 그야말로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 성격과 성향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이 발에 채이도록 많지만, 막상 들춰보면 썩 와닿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은 애초에 인정할 걸 인정한다. 내향성內向性외향성外向性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 어떤 사람도 둘 중 한 가지 성향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대전제로 둔 것.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아이패드 미니(심지어 레티나도 아닌 겁나 옛날 모델…)로 보는 e북 판으로도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그리 길지 않았던 책. 하지만 수시로 내 고민을 꿰뚫는 듯한 구절을 발견할 때마다 노트에 정성스레 옮겨적느라 일독에만 근 2주 넘게 걸렸다. 아마 올해 들어 읽은 책 중에 메모 분량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Depositphotos_19403987_m-2015.jpg


사람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은 백 번 천 번 공감하고 인정한다.


그래도 살다보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혼자 해도 재밌고 괜찮은 것도 꽤 많다. 난 지금까지도 혼자서 많은 것을 즐겨왔지만, 앞으로는 그 모든 것들을 좀 더 가뿐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 듯하다. 난 '내향성'을 타고난 사람이고, 그 때문에 혼자 뭔가 하는 것을 편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니까. (물론 같이 하길 좋아하는 것도 많습니다. ^^;)



<혼자가 편한 사람들>에서는 '내향인의 시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은 아니지만, 머지 않아 외향성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내향인의 장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거라는 이야기다. 글쎄…… 이 책이 올해 1월에 나왔는데, 반 년이 넘게 지난 지금 아직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지는 않은 듯 보인다. 시간이 좀 더 걸리려나 보다.


뭐, 그런 시대적 트렌드 같은 거야 때 되면 알아서 다가오고 알아서 흘러갈 것이고…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이제 누군가에게 더욱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요, 난 혼자가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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