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년 전, 나홀로 떠났던 1박 2일 강릉기행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특별히 무슨 날이었던 건 아니다. 특별히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홀린듯 길을 나섰다. 평소보다 2시간쯤 일찍 운동을 마쳤고, 끝나자마자 집에 들러 가방만 바꿔든 채 곧장 터미널로 향했다.
잠시의 생각할 틈도 없이 서둘렀던 길. 왜 그리 서둘렀느냐 묻는다면, 시작하기조차 쉽지 않은 여정이었기 때문이라 답하겠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그저 극도로 게으른 천성 탓이 가장 컸지만.
짐을 꾸리다가 문득 귀찮아져 미루고, 계획을 짜다가 갑자기 싫증나서 미루고, 겨우 마음을 잡고 '내일 출발'이라고 다짐했더니 아침에 비가 와서 미루고… 가겠노라 처음 마음 먹은 날로부터 그렇게 거의 2주 가량을 미적거렸다.
이러다간 올해 안에 못 갈지도 모르겠다 싶어 내친 김에 실행에 옮겼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버스 표를 끊었다. 행선지는 강릉. 지난 여름 우연히 한 번 송정해변을 갔었는데, 그때 한 번쯤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
오후 4시 출발. 강릉 터미널에 내린 건 대략 7시가 조금 안 된 때였다. 자…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연속적으로 터진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기대하시라. '웃픔' 가득한 삽질 스토리를.
오기 전부터 마음 먹었었다. '도착하면 교동짬뽕 본점에서 저녁을 먹어야지' 라고. 지도를 찾아보니 터미널에서 10~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 부푼 기대를 안고 열심히 걸어갔는데… 젠장, 월요일 정기휴무. 1차 시도, Fail. 허탈한 기분 위에 겹쳐진 허기가 한층 크게 몰려왔다.
하지만 주린 배 붙잡고 주저앉아 있으면 뭐하나. 다시 지도 앱을 켰다. 중앙동 시장이 그리 멀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바로 버스든 택시든 탔어야 했다…) 시장에 가면 뭐라도 있겠지 싶어서. 도착한 시간은 대략 8시. 특별한 일 없는 평일 시장은 이미 거의 파장 분위기였다. 그렇게 2차 시도, Fail.
더 이상 빈 속으로 걷다간 객지에서 쓰러질 것 같아 결국 근처에 있던 롯데리아에서… 저녁을 때웠다. 어디서 많이 보던 햄버거 주문하는데 진짜 농담 아니고 눈물날 뻔했다. 롯데리아, 서울에도 많은데… 굳이 강릉까지 와서… 꺼이꺼이…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시장 옆 홈플러스 맞은 편에서 카페베네를 발견했다. 기왕이면 로컬 카페를 찾아볼까 하는 생각을 당연히 했지만… 시간은 이미 9시 남짓. 기껏 찾아가 봐야 헛걸음 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 그냥 얌전히 카페베네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롯데리아 단계에서 이미 글러먹었지 싶어서.
카페베네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앉았다. 노트북을 열고 브런치에 쓰다 만 글 몇 개를 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창 너머의 여유로운 풍경 좀 바라보면서. 이쯤에서 삽질이 끝났다면 그럭저럭 괜찮은 마무리가 됐겠지만… 아니었다. 잘 곳을 찾으러 가려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휴대폰 충전기를 뽑았더니 두 짝이어야 할 플러그가 한 쪽만 덩그러니 남은 채 빠져나왔다. 부러진 거다. 하아아…… 오늘만 벌써 3번째 Fail. (부러진 플러그 사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게 뭔 소용인가 싶어 얼마 전에 지웠음.)
강릉 도착한지 고작 3시간 정도 사이에 삽질 3연타. 괜찮은 숙소를 찾으러 나설 정신상태가 아니어서 그냥 근처 찜질방으로 향했다. 다 필요없고 잠이나 푹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웬 아저씨가 거센 코골이를 선사하시는 바람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코골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은 이미 사람이 한가득. 결국 찾아낸 곳은 바람이 솔솔 드는 냉찜질방. 내가 뜨거운 것보다 시원한 걸 좋아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10월의 마지막 날에 차가운 방에서… 훌쩍. 매트 두 개 가져다가 바람 새는 곳 꼭꼭 덮고 새우잠을 잤다. 이쯤 되니 여길 뭐하러 왔나 싶더라.
어찌어찌 잠이 들었다가 6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대로 더 잤으면 입이 돌아갔을지도 모를 위기를 본능적으로 느꼈나보다. 채 덜 풀린 피로를 풀려고 목욕탕에 들어갔는데, 이건 또 웬일. 파란 눈의 색목인(?) 둘이서 냉탕 반신욕을 즐기며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얼추 본 것만 8캔 정도.
딱 봐도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고, 눈빛이 풀린 듯 보이는 외국인 둘. '눈 마주치지 마. 마주치면 시비 걸릴 거야.'라고 스스로 외치며 한쪽에 조용히 짱박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서양인의 친화력(?)은 상상초월이었다.
어디서 왔냐. 몇 살이냐. 자기들은 어디서 온 것 같으냐… "Where are you from?"이라고 용감무쌍하게(?) 물어봤지만, "블라디보스톡"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다섯 번 정도 "Pardon?"을 외쳤던 것 같다.
찜질방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송정해변은 지난번에 가봤으니, 강릉의 상징과도 같은 경포대를 가봐야지 싶었다. 지도를 보니 별로 멀지 않은 것 같아서 시내 구경도 할겸 느긋하게 걸었다. 가다가 어디 아침 먹을만한 곳이 있으면 먹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그게 둘째날 첫 번째 삽질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걷다가~ 걷다가 보니 어느새… 초당동에 와 있더라.
초당동 두부마을에 늘어선 식당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가서 순두부백반으로 아침을 먹었다. 담백한 것이 아침으로는 딱 좋더라.
딱히 할 게 없으니 소화도 시킬 겸 그냥 걸었다. 경포해변을 지나쳐 경포호 둘레길을 걷다가, 가시연습지와 허난설헌 생가에도 들러보고, 산책로 벤치에 누워 괜스레 하늘 사진도 찍어보고 그랬다. 제법 쌀쌀하게 부는 바람에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고 현자타임도 잠시 왔다 가셨지만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경포호에서 오죽헌까지 걸어가는 미친짓 시즌 2(?)를 찍은 뒤, 결국 백기 들고 택시를 탔다. 교동사거리 근처에 내려서 어제 못 먹은 교동짬뽕에 다시 도전해보려 했지만… 도로변까지 한가득 늘어선 줄을 보고 빠른 포기를 선언했다. 살다보면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먹을 만한 게 또 없나 싶어 찾다가 근처에 장칼국수 전문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또 삽질하기 전에 빠른 결단. 1박 2일 무수한 삽질 끝에 건진 첫 번째 쾌거(?)였다. 짠맛이 좀 세긴 했지만, 장칼국수 맛은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마지막 한 조각만 남은 듯한 정신상태로 터덜터덜 걸어서 터미널로 향했다. 본래 계획은 2박 3일을 잡고 왔었는데, 이 멘탈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퍼뜩 들어서다. 대충 챙겨입고 온 옷이 생각보다 춥기도 했고.
터미널에 앉아 어제부터 오늘, 이틀 간의 다사다난했던(?) 일정을 곱씹어보았다.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차라리 그 편이 낫지 싶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면 살면서 다시 올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걸 몸소 깨닫게 해줬던 딱 1년 전, 백수 시절의 기(奇)행.
다시 일을 시작하고 평범한 일상에 쫓기다 보니, 그 시절 그때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