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금도 팬이고 싶습니다.
<또 오해영>은 안 봤다. 아니, 못 봤다. OST 곡 <사랑이 뭔데>는 닳도록 들었다. 유승우의 음색과 어우러지는 서현진의 목소리를 곱씹기 위해 듣고 또 들었다.
지난 5월,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5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을 봤다. TV부문 최우수연기상, <도깨비>의 공유와 <또 오해영>의 서현진. 그 모습을 빤히 보다가 지금 이 글의 초반부를 메모해뒀었다.
그땐 아마 한창 무기력하고 게을러터졌던 시기였을 것이다. 작가의 서랍을 채운 수많은 끄적임처럼, 이 글 역시 단 몇 줄의 메모로 까마득히 잊혀질 뻔했다.
저녁 어스름 즈음, 문득 쓰다만 이 글이 생각났다. 별 계기는 없었다. 복면가왕에서 누군가의 노래를 듣다가 뜬금없이 서현진이라는 이름이 떠올랐을 뿐. 그래서 생각난 김에 되는대로 써서 마무리하려 한다. 꽤 오래 전, 내가 잠시 걸었던 '빠돌'의 길에 대한 회상 이야기다.
2001년. 전주에 살던 나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이자 '중2병'의 절정을 달리던 시기. 그 나이대 또래들이 흔히 그렇듯……이라고 말하지는 않으련다. 어렴풋하게 기억하건대 그 나이대의 나는, 누구와도 다른 독특한 인간이었다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 시절 나는 많은 시간을 어둡고 '멜랑콜리'한 상태로 지냈고, 연습장에 울적한 글귀를 적는 게 취미였다. TV라고는 틈틈이 음악방송을 보는 정도였는데, 그러던 어느날 '밀크'를 보게 됐다.
세상물정 모르던 중2 사내놈은 본능에 충실했다. <Come to me> 무대에서 흰색 모자를 쓴 멤버에게만 눈길이 갔었고, <Crystal> 뮤직 비디오에서는 머리를 양쪽으로 쪽진 멤버에게만 주목했다. 모르거나 기억나지 않는 분들을 위해 말하자면, 둘 다 서현진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사내놈의 본능이 어느 정도였냐면… 한 주에 몇 천원쯤 되던 용돈을 모아 CD를 사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당시 전북대학교 앞에는 꽤 큰 문구센터가 있었다. 아마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으니, 지금 기준으로도 큰 편이긴 할 것이다.
그 문구센터 1층에는 각종 디자인 소품이나 팬시 상품을 파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 중에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진열하는 곳이 있었다. 그 곳에서 꽤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유는 당연히 밀크의, 아니 서현진의 팬시 사진을 사기 위해서.
그때 앨범까지 사서 모아둔 사진들은 여전히 고향집 책장에 모셔져 있다. 얼마 전 집에 내려갔을 때 그걸 발견하고는 어느새 혼자 슬그머니 웃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본래 워터마크 넣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건 나름의 소중히 여기는 추억이라 부득이…)
팬시 사진 모으기도 끝이 아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 시절 나는 나름대로 '특별한 팬'이 되고 싶었으니까.
멜랑콜리한 감성을 펜과 노트로 풀어내던 나는, 한창 '시 쓰기'에 빠져 있었다. 지금의 안목으로 보면 그게 과연 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써있는 몇몇 시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자뻑 중이긴 하다.)
아무튼, 한 자 한 자 직접 눌러쓴 팬레터에 그때 써뒀던 시글귀 몇 편을 동봉해서 보냈던 기억도 난다. 거 참… 요즘 시대에 '팬레터'라는 표현을 쓰자니 무척, 매우, 굉장히, 낯설고 어색하다.
그녀가 다녔다는 구정고등학교가 어딘지 검색해보기도 했고,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계약 연애'에 대한 의견을 말했던 인터뷰도 꼼꼼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 학교나 사는 곳까지 찾아갔다면 스토커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다행히도 거기까지는 의지와 능력이 안 됐다.
이러한 온갖 노력(마지막 문단은 노력이라 하긴 좀 그런가?)이 무색하게, 밀크는 1집 활동 이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연합고사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나는 그녀들이 작별을 고했던 마지막 무대도 챙기지 못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었던 날, 불 꺼진 방 안에서 <Sad Letter>를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시간을 보냈을 뿐.
그렇게 뚝 끊어진 기억 이후로 시간이 흘렀다. 그것도 꽤 많이.
<짝패>(2011)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다. 2008년 군 시절, 30사단 훈련소에서 같은 기수로 신병 교육을 받으며 "우와~ 연예인이다~" 하고 있었던 배우 천정명이 주연으로 나온다기에 관심이 갔었다. (어머니는 요즘도 가끔 '왜 그때 깔깔이에 사인 하나 안 받아왔느냐'고 타박하신다. 마지막 주에 그 형님 있던 생활관에 줄 서 있던 게 사인 받으려고 그랬던 거였나…)
그때 출연진 명단에서 낯익은 얼굴과 이름을 봤다.
10년도 더 전에 봤던 마지막 이후로 처음이었다. 검색해보니 이미 그 전부터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반가웠고, 고마웠다. 중학교 2학년의 눈으로 봤던 그때도, 20대 중반의 눈으로 봤던 그때도, 내게 그녀는 변함없이 '아이돌'이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덕은 계를 못 탄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배우 서현진'에 대해서는 덕질을 한 적이 없다. 먹은 쌀밥의 무게만큼 신경써야할 게 많아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단순히 게을러져서 그런 건지는 모른다. 예전에 비하면 띄엄띄엄 찾아보는 정도다.
<짝패> 이후로도 한동안 뉴스로만 서현진이라는 이름을 접하다가, <낭만닥터 김사부> 때는 완결까지 본방사수에 성공했다. 그 기억이 스스로 참 뿌듯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과거 한때 그녀의 팬이었지만, 새삼 다시 팬이 돼 가고 있나보다.
여전히 난 한 번도 그녀를 실물로 본 적이 없다. 혼자만의 추억거리만 가지고 있을 뿐, 흔히 볼 수 있는 팬 인증샷 같은 것도 없다. 뭐… 살면서 연예인을 직접 본 기억 자체가 거의 없으니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닌가…
요즘은 여러 경로를 통해 옛 작품들을 다시 볼 수 있으니, 언젠가 그녀가 출연했던 드라마와 영화들을 차근차근 찾아볼지도 모르겠다. 오늘처럼 또 문득 생각이 난다면 말이다. 그렇게 조용히, 숨어있는 팬으로 계속 살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