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라 불리는 커다란 조각을 채워가는 이야기, <닥터 프로스트>
작품명 : 닥터 프로스트
플랫폼 : 네이버 웹툰
시즌1 완결 (유료), 시즌2 매주 수요일 연재 중 (무료)
벽에 걸린 시계가 12시를 알린다. 거실 불은 진작 껐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퇴근 후 '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 새벽 2~3시 정도까지 놀던 게 습관화된 탓이다.
리모컨을 들고 VOD를 뒤적거려본다. 주로 음악 관련 예능을 즐겨보는지라 드라마나 영화 VOD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잘 모른다. 평소 잘 보지 않았던 곳, OCN 채널의 드라마 목록을 살핀다.
<닥터 프로스트>, 언젠가 흥미롭게 봤던 웹툰의 제목.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있긴 했는데... 어느새 종영되어 VOD로 나와있었다.
허옇게 탈색시킨 듯한 주연 송창의 씨의 머리를 보니 뭔가 어색하다. 원작의 프로스트 교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뭐 어쩔 수 없겠지.
현실에서 표현할 수 있는 '흰 머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드라마보다는 원작 웹툰을 놓고 이야기하는 편이 좋겠다. 아무래도 드라마는 10편 분량으로 조정되어 있기도 하고, 재해석 과정에서 스토리 라인이 상당히 달라져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원작 쪽에 더 호감이 가기도 하고.
가물가물하긴 한데 꽤 인기순위가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프로스트'는 주인공의 본명이 아니다.
frost
1. 서리
2. 성에
3. 성에로 뒤덮다; 성에가 끼다
게임 등에서 익숙하게 보던, 차갑다는 이미지를 가진 단어. 그게 이름이라니... 하얀 머리칼과 시종일관 유지하는 무표정. 이름까지 삼박자가 되어 사람 자체가 무척 차가워 보이기도 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천재 심리학자. 음... '느끼지 못한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잠시 미뤄두련다. 어차피 포인트 자체는 크게 어긋나지 않았으니까.
희노애락(喜怒哀樂). 흔히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라 불리는 것들. 프로스트 교수의 사전에는 없는 말이기도 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에 그는 모든 상황을 냉철하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이 간단하지만 흔하지는 않은 설정 탓일까. <닥터 프로스트>의 스토리 중에는 '낯선 장면'들이 많이 보인다. 스토리 흐름상 감정이 들어가야할, 혹은 감정의 흐름에 맡겨야 자연스러울 부분에서 맥이 끊기곤 한다.
저럴 땐 화를 내야 정상 아닐까?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거지? 조금만 사려 깊게 반응해줄 수는 없는 건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로 이어진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기에 당연한 거라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패턴이라든가, 보고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인간 관계에 서툰 모습.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때문에 프로스트 교수의 행보에는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기대감이 깔려 있다. 바꿔 말하면, 언제나 어느 정도의 흥미가 보장된다고나 할까.
감정이 없기에 모든 현상을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다. 찰나의 순간에 인간의 무의식을 훑어보고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모습. 때로는 경이롭거나 통쾌하기까지 하다. (부럽기도 하고...)
물론 그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이야기의 기본적인 구조를 봤을 때, 결말에서는 대개 갈등이 풀리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져주곤 한다.
하지만 프로스트 교수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긍정적인 메시지'라는 것 역시 감정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니까.
다소 밍숭맹숭해질 수 있는 에피소드의 끝자락을 위해 윤 조교라는 캐릭터가 배정되어 있다. 감정이입과 엄청난 주변머리(흔히 오지랖이라 부르는...)로 이야기 전개에 파장을 일으켜놓곤 하는 그녀. 프로스트 교수와 상반되는 성격으로 인해 그만큼 비중 있게 돋보인다.
<닥터 프로스트>는 '성장과 성숙의 플롯(Plot)'에 대해 새로운 접근 방향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대개 성장&성숙이라 하면, 뭔가 부정적인 쪽에서 긍정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수직적인 변화를 담아낸다.
프로스트 교수의 '성장&성숙'은 방향이 다르다.
완벽에 가까운 지적능력과 에이스 침대 뺨을 후려칠만큼이나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무심하리만치 시크한 눈빛은 진중하면서도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미 '완성된' 모습이랄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런 모습을 동경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하지만 여기에 '감정'이라는 요소가 결여되자, 그것은 멋있다기보다는 어딘가 처량해보이는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감정이라는 것은 대개 이성과 상반되는 것으로 다뤄진다. 비논리, 즉흥적, 상대적... 이런 특성들이 함께 논해지곤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요소이건만, 이것이 결여된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
<닥터 프로스트>는 바로 이 의문에 하나의 답안을 제시해준다. 비록 만고불변의 정답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풀이다.
이는 애초에 이종범 작가가 의도했던 방향이라 여겨진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프로스트 교수는 '결여되어 있던' 감정의 조각들을 조금씩 '채워간다'.
프로스트 교수의 이야기는 비어있는 인간의 한 조각을 채워가는 성숙의 과정에 가깝고, 그러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넓힐만큼 넓혀놓은 울타리 안에 빈 공간을 찾고,
본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뭔가를 채워가는 느낌.
언젠가 감정의 마지막 조각을 되찾았을 때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한 그의 울타리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아마도.
최근 <닥터 프로스트>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됐다.
이전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뚝 끊겨버린 듯한 이야기를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이제야 비로소 그를 프로스트 교수가 아닌 백남봉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부르기엔 '프로스트 교수' 쪽이 좀 더 폼나고 있어보이긴 하지만...
현재까지의 전개를 봤을 때 그는 드디어 '감정과의 싸움'을 시작한 듯하다. 전편에서의 심리학적 지식은 온전히 가지고 있는 채로 자신에게 결여됐던 것을 채우기 위한 여정에 오른 것이다.
완전함으로 가득했던 천재로서의 삶에 찾아든 '불완전한' 한 조각, 감정(感情).
정신병원 환자로 눈을 뜬 프로스트 교수... 아니, 백남봉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요즘 매주 <닥터 프로스트>의 연재를 기다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다른 이유를 하나 더 꼽자면?
음... 파블로프가 보고 싶어서...? (귀, 귀요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