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못 보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잊어버려.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그렇게, 쉽게 이야기했다. 아직 어리니까 금방 털어낼 수 있을 거라고. 자기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솔직히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별을 통보한 쪽에서 덧붙이는 형식적인 위로겠지만, 어쩜 그렇게 위로가 안 되는 말만 쏙쏙 골라서 할 수 있을까.
내겐 처음인 이별이다. 그녀는 아니었을까? 뭐, 아니었나보다. 이런 종류의 아픔을 나보다 많이 겪어봤을 것 같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는 똑같이 이야기한다. '지나고 보면 다 한때의 추억이 되고, 그렇게 별 거 아닌 일이 돼 간다'고 말하던 다른 사람들처럼.
하지만, 감정이라는 건 상대적이다. 아픔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상처일지라도 다른 어떤 이에게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기준으로 생각하나보다. 난 당장 숨이 턱턱 막혀올 정도로 답답한데, 너무 덤덤하게 말을 잇는 걸 보면.
어린 아이가 상처를 입으면 소스라치게 운다. 놀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일단 아프니까 운다. 그럼 어른들은 약을 발라주거나 호호 불어주는 등의 행동을 하며 달랜다. 괜찮다고, 금방 나을 거라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가끔, 정말 가끔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 어른들 중, '아이가 느끼는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상처가 나면 아프다는 건 누구나 잘 안다. 상처를 많이 받다보면 작은 상처에 면역이 생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타인의 작은 상처'를 마치 자신의 작은 상처처럼 여기는 이도 있다. 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별 것 아닌 상처'로 정의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별 것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도 별 것 아닌가? 그 답은 너무 간단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산다. 그렇게 살다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곤 할 것이다. 지금, 여기, 내 앞에서,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을 꺼내는 그녀처럼. 그 위로인 척 하는 가짜 위로가 내 상처를 더 찢어놓았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모를 거다, 분명. 그러니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녀에게 나는, 그냥 '아이'였을 뿐일까? 넘어져서 까진 상처를 부여잡고 세상이 떠나갈듯 우는 아이의 모습이었던 걸까? 내겐 너무 크게만 다가오는 그 아픔이, 그녀에게는 '이별의 아픔'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익숙한 것이었을까? ……세상 누구 못지 않게 나를 많이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아니면 이미 마음을 정리한 그녀에게 나는, 아픔을 받건 말건 상관없는 사람이 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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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길지도, 별로 짧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형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내가 건넸던 음료수만 홀짝이고 있었다. 분명 다 마신듯한 눈치인데 괜스레 계속 캔을 기울여 음료를 마시는 척 하고 있다. 뭐…… 말을 하자니 어렵고, 가만히 있자니 어색해서 그런가보다. 그럼… 내가 좀 더 이야기하면 되지, 뭐.
"헤어지고 싶지 않았어요. 아니, 헤어질 수가 없었죠. 당장 내일부터 그 사람이 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가슴 언저리가 미칠 듯이 아픈 거 있죠. 뭐랄까… 그대로 돌아서고 나면 다음날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요.
근데 아무 말도 못했어요. 지금 생각 같아서는 '죽어도 못 보내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 말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 게 자존심이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헤어지자고, 지금 헤어져야 조금이라도 빨리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게 담담하게 말하는 그 사람을 보니 도무지 아픈 티를 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또 아프고 후회스러운 거 있죠. 차라리 그때 아픈 티를 팍팍 냈더라면, 그러면서 비굴하게라도 매달렸다면, 지금은 좀 덜 아플까? 혹시 그 사람이 헤어지자는 말 대신 내일 다시 만나자는 말로 날 보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아팠을까, 그 반대였을까? 그런 생각도 종종 해요."
"……"
"참… 헤어진다는 게 그렇게 쉬울 줄은 몰랐어요. 같이 갔던 곳도 많고, 같이 먹었던 것도 많고, 그렇게 참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그냥 '헤어지자'는, 1초도 안 걸리는 짧은 한 마디면 끝이더라고요. 그 사람은 그렇게 끝이었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었는데… 그땐 정말 혼자 살아간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
"곧 죽을 것처럼 아팠다고 해놓고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입 털고 있는 걸 보면… 어떻게든 살아는 있었네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뭐,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보아하니 그리 오래된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네, 얼마 안됐어요. 솔직히, 그래서 지금도 좀 아파요."
"……"
형님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음료수 캔만 기울인다.
"안 물어보세요?"
"뭘?"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물어봐서 뭐하냐. 그런다고 이미 들은 이야기가 안 들은 게 되는 것도 아닌데. 점심시간 끝나가네. 음료수 잘 마셨다."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런 소감(?)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야기 잘 들었다' 같은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의 어설픈 위로를 원망하듯 이야기해서일까? 아니면 저 형님의 성격이 원래 그런 걸까? 이유야 어쨌건, 이야기했던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형님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홀가분하게 느껴진다.
몸을 일으키려던 형님이 중심을 잃은 듯 잠시 휘청거린다. 내 어깨에 손을 짚고 중심을 잡더니,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들긴다. 그 손길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형님 성격상 아마,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건 네 몫이다'라는 뜻은 아닐까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hOREkPq1aVQ
어려도 아픈 건 똑같아
세상을 잘 모른다고 아픈 걸 모르진 않아
괜찮아질 거라고 왜 거짓말을 해
이렇게 아픈 가슴이 어떻게 쉽게 낫겠어
너 없이 어떻게 살겠어… 그래서 난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가려거든 떠나려거든 내 가슴 고쳐내
아프지 않게 나 살아갈 수라도 있게
안 된다면 어차피 못살 거
죽어도 못 보내
아무리 네가 날 밀쳐도
끝까지 붙잡을 거야 어디도 가지 못하게
정말 갈 거라면 거짓말을 해
내일 다시 만나자고 웃으면서 보자고
헤어지잔 말은 농담이라고… 아니면 난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가려거든 떠나려거든 내 가슴 고쳐내
아프지 않게 나 살아갈 수라도 있게
안 된다면 어차피 못살 거
죽어도 못 보내
그 많은 시간을 함께 겪었는데
이제와 어떻게 혼자 살란 거야…
그렇겐 못해, 난 못해
죽어도 못 보내
정말로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가려거든 떠나려거든 내 가슴 고쳐내
아프지 않게 나 살아갈 수라도 있게
안 된다면 어차피 못살 거
죽어도 못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