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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歌 #17. 뜬 눈으로 보내다

오늘도 찾아온 생각의 안개, 그 속을 헤매는 <불면증>

by 이글로

#1.


붙였던 눈을 다시 뗀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어느 난센스 수수께끼에서는 세상에서 눈꺼풀이 가장 무겁다 했었다. 잠이 올 때 내려오는 눈꺼풀은 천하장사도 들어 올릴 수 없기 때문이라나. 하지만 오늘 내 눈꺼풀은 반대다. 오히려 천하장사라도 잡아내리지 못할 듯 가볍기만 하다.


머리맡에 놓아둔 스마트폰 쪽을 힐끗 바라본다. 웹툰이나 볼까? 아니면 게임이라도? 노래를 들으면 좀 나으려나?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거둔다. 조금만 더 눈을 감고 버텨보자,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너, 머리만 대면 5분 안에 잠들더라? 진짜 신기해!



언제 어디서든 잘 자는 타입.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온종일 잠만 잤어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또 잘 수 있는 타입. 불면증이라는 단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타입. 예전의 나는 확실히 그랬다. 그걸 부러워하는 사람도 꽤 많았고.


요즘은… 다르다. 전날 밤을 꼬박 새우고 자리에 누워도 쉬이 잠들지 못한다. 뜬 눈으로 몇 시간을 보내는 일이 허다하고, 기껏 잠들어도 금방 깨기 일쑤다. 이따금씩 감성 게이지가 한계치를 뚫고 나오는 날이면, 눈을 감고 있는 시간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수많은 생각의 조각들이 머리맡에 앉아 계속 눈꺼풀을 노크하는 느낌이랄까.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 건지, 정리도 잘 되지 않는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생각의 안갯속에서 길을 잃는 건 한순간. 싱숭생숭한 마음에 괜스레 옆에 앉혀둔 코알라 인형을 툭툭 건드리거나 말을 걸어본다. 대답은 없다. 당연히.



#2.


오리무중 한복판에서 길 하나를 찾아낸다. 미래, 고민, 불안… 그 길 위에 놓인 단어들을 따라 상상 속 걸음을 옮긴다.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절실히 쉬고 싶다는 생각에 서툴게 '사회인에서 자연인으로' 돌아왔던 나다. 늦은 밤까지 일 생각을 놓지 못하던 시절. 자고 일어나면 출근, 돌아오면 잘 시간이었던 시절. 그렇게 사는 게 너무 무의미하다 싶어 대책 없이 결심한 휴식이다.


이제 나는 그때 선택하지 않았던 또 다른 길을 생각한다. 그때의 결심으로 치렀던 기회비용을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도 삶과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젖어있다.



아깝다, 그 시간들이.
그때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었을까.



간사하기 짝이 없는 생각.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데… 그저 휴식을 간절히 원하던 그때의 나와, 뭐라도 시작하고 싶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이려나.



#3.


안갯속에는 여전히 수많은 생각이 남아있다. 개중 몇몇은 길을 따라 걷는 내 뒤를 쫓아온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온 그 방문객들은 끊임없이 머릿속을 두드린다. 나도 생각해달라고. 나도 잊지 말라고. 당장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간신히 찾아오려던 잠을 계속 쫓아낸다.


원하지 않았건만 막을 수도 없는 축객逐客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가련한 잠을 계속 쫓아내는 생각의 안갯속 무언가. 질문을 던져본다. 무의식 속 그 어떤 이에게. 혹은 나 스스로에게.



대체 뭐지? 누구야, 너.



가고자 하는 곳은 있었으되, 그곳으로 가는 길을 몰랐다. 보다 넓은, 기댈 곳 없는 세상에 스스로를 내던지면 다를 줄 알았다. 안주安住할 울타리가 없는 벌판에 서면 뭐라도 깨달을 줄 알았다.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다 돼 가건만, 달라진 건 없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그곳. 하지만 난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듯하다. 막연함, 무력감, 자괴감. 오늘 밤을 앗아간 불안함의 정체는 그것이 아니었을까.


머리맡의 스탠드를 켠다. 몸을 일으켜 창문을 바라본다. 날씨가 추워 문을 열 엄두는 내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본다. 조금, 아주 조금 밝아진 것 같다고 느낀 건 내 착각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사실, 진정 잠들지 못함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백 배 사죄해야 마땅하다. 사나흘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이 녀석은 괴롭다 싶을 만큼 심각하지는 않으니까. 주위에서 흔하게 겪을 법한, 결코 특별하지 않은 잠 못 이룸. 그냥 그 정도다.


기어이 안개를 뚫고 쫓아 나온 생각의 행렬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결국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이어폰을 꽂으며 좋아하는 노래에 흠뻑 취하기로 한다. 뇌리를 빙빙 도는 생각들을 애써 못 본 체 하다 보면 어느새 창밖이 밝아오는 걸 볼 수 있겠지…



무작위로 재생한 첫 곡. 그 노랫말과 달리 내겐 이런 밤에 집어 들 수 있는 낡은 기타조차 없다. 하긴, 설령 기타가 있어도 내 성격엔 못 잡을 거다. 늦은 밤 이웃집과 얼굴 붉힐 일을 만들긴 싫으니까. 가뜩이나 생각도 복잡한데……


https://www.youtube.com/watch?v=KOaCMyphU3Y


이른 밤 난 또다시 낡은 기타를 잡아
지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지
아침 해가 날 재워줄 때까지 say

우~ 이제는 날고 싶지만 singing
우~ 자신이 없어
차가운 눈빛도 지친 기대도
내게 점점 멀어져
Is there something wrong with me?

해 뜰 때까지 잠들 수 없어
뜬 눈으로 밤새워 난 노래를 불러
알 수 없어 잠들 수 없어 (I can't sleep)
Tell me what should I do 우 예~


해가 뜨고 난 뒤에야 잠을 자
내 우뇌의 상처는 언제쯤 아물까
복잡하게 꼬인 내 머릿속의 고민
몇 잔의 술 덕에 나는 이리도 아픈가

어차피 빈 손으로 왔다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난 여지껏 깡통만 찼다
재난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와
날 벗기고 굶기고 내 앞길을 망치고
또 가난이란 독한 놈을 남기고 가더라
밤잠까지 가지고 가더라 좀 힘들더라
야속하게도 날마다 태양은 제 시각에 뜨더라

시간은 흐른다 울거나 웃거나 아프거나 달거나 쓰거나
난 계속 늦는다 고민 속에 늙는다
언제쯤 내 침대 위엔 단잠의 싹이 움틀까


해 뜰 때까지 잠들 수 없어
뜬 눈으로 밤새워 난 노래를 불러
알 수 없어 잠들 수 없어 (I can't sleep)
Tell me what should I do 우 예~


이른 아침에 작업을 마치네
잠들지 못한 채 생각에 잠기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데

내 통장 속에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어
절뚝거리시는 어머니 약봉지는 더 늘어
말라버려 눈물도 난 힘없이 붓을 들어
한없이 그려 슬픈 표정 짓는 자화상을

사랑에 버려져 길을 잃어버린 나는
서랍 속에 있는 실을 잃어버린 바늘
매일이 가을 왜 이리 하늘이 그립지
땅으로 굽어진 고개는 하늘을 바라볼 수 없으니

내 사랑은 한때의 장난인가
난 달콤한 쾌락에 눈먼 장님인가
나는 썩었다라는 푸념만 남긴 채
순수했던 어릴 적 그때를 내 눈 속에 그린다


해 뜰 때까지 잠들 수 없어
뜬 눈으로 밤새워 난 노래를 불러
알 수 없어 잠들 수 없어 (I can't sleep)
Tell me what should I do 우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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