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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회고 #1. 잠시 휴식, 뒤돌아본 시간

스물아홉에 선택한 '돌아온 백수', 나는 무엇을 향해 가는가

by 이글로

지금도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됐을까?
언제부터 그렇게 여기에 매달렸었지?
대체 왜?



물론 답은 나오지 않는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어떤 중대한 계기 하나쯤은 있을 법도 한데, 까마득한 것이 당최 떠오르질 않는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래서 이날 이때껏 똑같은 의문품은 채 산다.

그저 가끔씩 끄집어내다보면 하나둘씩 발견하곤 하는 기억 조각들을 이 곳에 공유하면서.

다 적기엔 너무 많고 긴 이야기.

그래서, 오늘은 굵직한 줄기들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 시절, 나는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픽션(fiction)이나 팩션(faction)이 뭔지도 몰랐고, 복선이나 주제의식, 심리묘사와 캐릭터 배분의 방법 같은 것도 뭐 하나 제대로 배운 바 없었다.

순수문학은 무엇이고, 장르소설은 왜 따로 노는지 고민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이야기를 쓰는 게 즐거웠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세상물정 모른 채 삶을 너무 가벼이 여긴다고 생각하신 걸까.

어지간하면 내 뜻을 존중해주던 부모님도 조심스레 반대의 뜻을 보이셨다.

그 때가 내 중학교 시절.

한 15년쯤 전이겠다.


당시 우리집은 갓 ADSL을 설치한지 얼마 안 된 집이었다.

그마저도 지금처럼 속도가 빵빵하지도 않았다.

그 전에는?

당연히 전화선 빼서 몰래 인터넷을 했었다.

매번 들켜서 불호령을 맞곤 했지만.



e북이니 개인출판이니 하는 것은 어디 달나라 이야기 쯤으로 여겼을 시절이었다.

연줄이나 인맥 하나 없는 집에서 소설가가 되어봤자 무슨 수로 입신(立身)하겠냐는 아버지 말씀.

이름을 알리지 못하면 골방에 틀어박혀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지 않겠냐는 어머니 말씀.

부정하고 싶었다.

반항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 비슷해 두려움이 더 앞섰다.

당시 다음(Daum)에서 서비스하던 소설 카페에 가입해 이런저런 단편을 끄적이곤 했었지만, 그걸로 먹고산다는 건 그야말로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이야기였다.

머리 좀 굵어진 지금에야, "그건 편견입니다. 누가 들으면 세상 모든 소설가들이 그렇게 사는 줄 알겠네."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부모님 말씀에 영향을 많이 받던, 꿈만큼이나 두려움도 컸던 그런 나이.






소설가의 꿈은 그렇게 접어뒀지만, 여전히 글은 쓰고 싶었다.

그래서 기자를 염두에 두고 사회과학계열 언론정보학 전공을 선택했다.

모의고사 성적보다 내신 쪽이 좀 더 괜찮았던지라 담임 선생님도 수시 전형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했다.

선생님 말씀이라면 불문곡직하고 일단 귓등으로 받고 보던 질풍노도의 절정기.

겁도 없이 딱 2개만 원서를 쓰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나자빠졌지만, 그 중 하나가 덜컥 붙어버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던데, 스스로도 돕지 않던 나는 대체 왜 도와줬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사실 미치도록 감사합니다. 착하게 살게요. 진짜로요.)


언론을 공부했지만 여전히 내가 듣는 전공수업은 글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사이 한 가지 더 생긴 관심사를 꼽으라면 바로 게임.

주변 사람들보다 더 자신있는 것을 찾다가 엉겁결에 결정한 주제였지만, 그 덕분에 제작수업 성적도 꽤 괜찮게 받았다.

솔직히 그게 내 첫 번째 취업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지만......


스물 여섯 봄.

부분등록으로 온라인 수강 하나만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넥슨에서 진행하는 3일짜리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NDC)에서 서포터즈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고, 그 첫 날 회사 합격 전화를 받았다.

만약 내가 게임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가고 싶다 생각했던 유일한 회사.

2012년 4월 26일.

난 그렇게 '게임기자' 명함을 손에 쥐었다.






처음에는 마냥 행복했다.

보도자료 올리는 일도 버거워 거의 평균 1, 2시간씩 퇴근이 늦어지곤 했지만, 모든 게 재미있었다.

게임을 좋아했고 글 쓰는 건 더 좋아했으니까.

얼핏 기억하기로 한 1년 반 정도까지는 다분히 긍정적이었던 듯하다.


그 후, 슬럼프가 찾아왔다.

게임을 좋아하긴 했지만 잘 알지는 못했던 기자.

선호하는 게임 외에는 어설프게만 접했던 기자.


스스로의 부족함을 용납할 수 없었고, 그런만큼 멘탈은 붕괴에 붕괴를 거듭했다.

영 만족스럽지 못한 글에 내 이름이 달려 올라가고 나면 몇 번이고 다시 보며 고치기 일쑤였고, 어김없이 회의감에 시달렸다.

또, 그런 글을 쓰느라 보내야했던 시간들은 미치도록 아까웠다.


그렇게 하루하루 조각나던 정신상태가 거의 가루가 될 때 즈음, 더 이상 못 견디겠다 싶어 퇴사를 선택했다.

남들이 보기엔 잘 다니는 직장을 제 발로 걷어차고 나온 꼴이지만...... 나는 일단 '살아야' 했다.


거의 3년, 정확히는 2년 11개월.

2015년 3월 27일.

무척이나 가고 싶었고, 한때 행복하게 일했던 첫 직장을 떠났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울적했다.

혼자 불 꺼진 방에서 술을 퍼 마시며 내가 썼던 기사들을 찾아보는 띨띨이 짓도 몇 번 했었다.

신경정신과 상담도 받으러 가봤고, '과도한 완벽주의'를 좀 버릴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숱하게 들었다.

그래요, 나도 아는 이야기에요.

머리로는 빠삭하지만, 가슴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간의 칩거를 끝내고, 기자 시절 알게 된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보다 조금 먼저 퇴사를 선택했던 고향 선배를 만났고, 특히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게임사 팀장님께도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기고칼럼 몇 편을 써주셨던 심리학 박사님께도 찾아갔다.

구실은 안부를 여쭙는 거였지만, 기왕 간 김에 조언도 한 번 구해볼 심산이었다.

점심 한 끼를 얻어먹으면서 '당분간 프리랜서처럼 글을 써볼까 한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더니, 웬 걸.

그 분 말씀이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다.


"아, 그거 좋죠.

당장은 좀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꾸준히 쌓다보면 5년, 10년 뒤에 그걸 밑천 삼아 먹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열릴 겁니다.

여러 가지로 시도해보세요.

지금 아니면 언제 합니까?

전 응원합니다."


물론 그게 정답일 수는 없다.

직접 경험하신 바를 토대로 해주신 조언이더라도, 내게 적용하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하긴, 사람 사는데 정답 같은 게 어디 있으랴.

다만 그 말씀이 내게 와닿았던 건, 내 뜻을 존중해주는 진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렇게 살아도 된다'라는, 마음 편안해지게 하는 다독임 때문이었을지도.






한동안 웹소설이라는 포맷에 주목했다.

여기저기 서비스 중인 플랫폼들을 찾아다니며 끌리는 작품 몇 개를 찾아봤다.

그 중 하나, <프렐류드>를 읽다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파트를 하나 소개한다.



- 프로스포츠 선수, 기업의 프로페셔널들, 소프트웨어 개발자, 음악가, 연예인, 게이머, 요리사, 하다못해 길거리 춤꾼도 자기 기량을 갈고닦는 일에 매일매일 투자하는 시간이 엄청나다는 건 알고 있을 거야. 그런데 우리 예비 작가님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너무 자신만만하게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


- 인문학이 단순히 지식의 집합일까? 인간은 60조 세포의 무더기에 불과한 생물인가? 단어를 많이 안다고 좋은 문장이 나오나? 명품으로 처바른다고 패션이 되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거다. 작가인 여러분은 무슨 뜻인지 알 거라고 믿는다.


from。 카카오페이지 웹소설 '프렐류드' 107화 中


난 인문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그 내재된 가치를 높게 보고 뒤늦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한 분야에서 등장했던 용어가 다른 분야에서도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들이 서로 엮이고 엮여 있음과 조금씩 '아는 것'이 늘어감을 느낄 때의 즐거움.

여기에서 얻은 통찰력을 가지고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거라 믿고 요즘 종종 인문학 책을 찾아다닌다.


내가 가는 길은 애초부터 정답 같은 건 없었다.

한 발자국 딛을 바로 앞조차 캄캄하지만, 저 끝 어딘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만 바라보며 떠나는 길.

나는 발 끝이 아닌, 저 결승점을 상상하며 걷는다.

천천히, 지금 딛는 곳이 충분히 단단한지를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그 '과정'이 모여 멋진 결과를 내줄 거라 계속 믿으면서.



여전히 글도 쓴다.

매일 하나 이상은 쓰고 싶지만, 오만가지 잡념에 시달리느라 아직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차고 넘치게 많고,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이다.

잠시 여유를 갖고 숨을 돌리는 지금, 다가오는 것들을 하나하나 맞이하면서 내 길을 닦아가는 중이다.


누군가 내게 말한다.

나이를 먹고 한 분야의 지식을 꾸준히 쌓다보면 어느 순간 그 분야에서의 글쓰기는 터득하게 된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 글쓰기는 더 이상 특기도 아닐 뿐더러 상품성도 없다고.

그리고나서 묻는다.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려 하느냐'고.


글쎄.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 길을 선택하고 걸었던 사람은 수두룩하다.

그 중 누군가는 나름대로의 뜻을 이뤘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고배를 마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성공했다고 해서 그 방법이 만병통치의 묘수는 아니다.

반대로 실패했다고 해서 '무조건 패하게 될' 수도 아니다.

아직 가지 않은 길은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물론 "그거 해서 어떻게 먹고 살려고?"라는 질문을 구태여 삐딱하게 볼 필요는 없다.

관심을 가져주고 걱정해준다는 건 오히려 고마운 일이니까.

포인트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기준 정도는 내 스스로 확실히 그을 수 있는 용기다.

내 인생이니까.


네 눈은 너의 세상만을 보여줘.
1인칭 시점이지. 오직 너만이 주인공이야.

너의 세상이야.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가?


from。네이버웹툰 <죽음에 관하여> 中

* 유료만화인 관계로, 캡쳐본 대신 대사 인용으로 옮깁니다.



엊그제였을 거다.

브런치 관심작가 알림으로 날아온 글들을 읽다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을 만났다.

그 분께 내 이야기도 해드리겠노라 약속했었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망설이다가 잡설이 한가득인 결과물이 나왔다.

비슷한 방식으로 쓰겠다고 했는데, 써놓고 보니 안 비슷한 건 함정......


그 분이 썼던 표현을 오마주(Hommage)하는 뜻을 담아 맺음말을 적고자 한다.



나는 사막에 태어난 물고기,
언젠가 이 곳에도 장대비의 기적이 올 거라 믿는다.

저 바다까지 이어질 개울이 만들어지는 기적이.



https://www.youtube.com/watch?v=ONLW-q4S8Gg

Just Do It. 이 영상을 아직 안 보셨다면, 한 번쯤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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