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심리학에 푹 빠져버렸다.
사실 나는 '학學'이라는 글자가 붙은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뭐… 단순하다.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
물론, 몇 년 전 즈음부터 공부라는 단어의 뜻을 새롭게 정의하려 하는 중이다. 교과서에 밑줄 치고 참고서 달달 읽어가며, 오직 시험 점수를 잘 받으려 해왔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공부'가 아니었지 싶다. '공부는 평생 해야 마땅한 것'이라는 말이 어울려야지만 진짜 공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달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공부라는 단어가 썩 마음에 들진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이유를 굳이 더 찾자면…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학창 시절 내게 끝없는 좌절을 맛보게 했던 수학數學 때문이요, 다른 하나는 그 분야에서의 권위를 마치 권력처럼 휘두르려는 이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네가 이 분야 공부를 안 해봐서 그러는데~"와 같은 종류의 멘트들 말이다. 이런 일을 수십 번쯤 겪다 보니, 어느 순간 'OO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소름이 돋고 거부감이 생기곤 하더라. (정말 '학을 떼고' 싶은 심정)
이런 거지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이라는 말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학'이라는 글자를 붙이든 떼든 상관없이, 입에 착착 감긴다고나 할까. (물론 기왕이면 떼는 게 더 좋지만.) 그래서 냉큼 집어 들었다. 이유 같은 건 일단 읽고 나서 차차 생각해봐도 될 문제. 하긴, 책 고르는데 이유 같은 거, 없으면 또 어떤가.
브런치에 발행한 글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작가의 서랍에 쌓아둔 녀석들까지 하면 꽤 많다. 그중에서 비교적 최근에 메모한 뒤 저장해둔 것들을 살펴봤다. 얼개를 그려보니, 요즘 내 관심사가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고 하던가. 별 큰일 없이 순탄하게만 살아왔던 삶이었는데, 최근 몇 년간 태클이 꽤 있었다. 얕은 것, 깊숙한 것, 제법 다양하게. 나이 먹어가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려나 싶더니, 생각해보면 대개 '사람' 때문에 생긴 것들이었다.
취향, 습관, 가치관, 정체성, 식성, 꿈 등등… '개인'을 정의할 수 있는 요소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모두가 각기 씨줄과 날줄이 돼 이리저리 섞임으로써 한 사람을 만든다. 인간의 다양성을 입 밖으로 꺼내기 위해 걷어내야 할 편견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 자신을 먼저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오만 가지 편견으로 가득했던 나. 그것을 깨닫고 인정할 즈음에 심리학이 눈에 들어왔던 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근 한 달에 걸쳐 이 책을 천천히 읽으며, 볼 때마다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자꾸 친숙하게 다가옴을 느꼈다. 아마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의 내면을, 사람과 사람의 차이를 알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저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사람'이라는 호칭으로 함께 묶여 있는 이상 존재의 '공통분모'는 분명 있다. 공통점에 기반을 둔 차이점 찾기. 맨땅에 헤딩하며 알아가는 것보다는 확실히 쉬울 것이다.
이 책의 작가는 '누다심'이라는 필명을 쓴다.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심리학'이라는 뜻. 작가라면, 필명에 담긴 의미 또한 하나의 약속이 아닐까 싶다. 장담하건대, 이 작가는 약속을 지켰다.
심리학이라는 호수에 처음 발을 담가볼까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된다. 심리학의 지극히 기초적인 본질부터 짚어가는 건 맞지만, 학교 전공서나 여느 개론서들처럼 학구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일독 후에 되짚어보면 심리학 개념들이 제법 머릿속에 정리가 된다. 두세 번쯤 읽으면 더 나아질 것이다.
이미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일수록,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이들일수록, 심리학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살면서 한 번쯤 겪었을 법한 흔한 상황들. 혹은 한 번쯤 품었을 법한 흔한 마음가짐들. 이 책에을 차분히 읽다 보면 '어, 이거 내 이야기 같은데?' 싶은 익숙함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으리라.
자고로, 익숙한 것은 더 쉽게 마음의 벽을 뚫고 들어오는 법. 만약 누군가 내게 책을 읽은 소감을 짤막하게 묻는다면…… "심리학과 학점은행제를 뒤적거리고 있다"는 말로 답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