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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평행선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줄 수 있다면 말이지.

by 이글로


1.


세상 모든 사람들은 여자, 아니면 남자다.


뭐… 사회문화적으로는 그 외 다른 성별에 관한 담론도 있지만, 일단 생물학적으로는 그렇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름'을 말할 때 맨 처음 분류 기준으로 쓰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자와 남자는 왜 늘 평행선인 걸까?>라는 제목의 이 책은, '다름'을 논하는 거대한 작업에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사례라 하겠다.



요즘 나는, 단 한 꺼풀의 가식이라도 더 벗어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런 고로, 이 글도 문득 떠오른 솔직담백한 소감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까놓고 말하자면… 여자가 어쩌구 남자가 어쩌구 하는 종류의 스토리는 지겹다. 가만히 누워 SNS만 뒤적여도 하루 몇 개씩 볼 수 있을 정도니까. 책도 사실 마찬가지다. 꽤 오래 전에 나온 거지만, 책 중에서도 두 권이 딱 떠오른다. (두 권 다 읽은 거라 바로 생각난 듯하다. 심지어 지금 등 뒤에 있는 책장에 꽂혀 있음…)


들춰보면 실제로 비슷한 구석이 꽤 많다.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다룬 책. 다시 말해, 부한 이야기. 조금 더 싸가지 없게 표현하자면 뻔한 이야기다. 흠… 저자로부터 선물 받은 책인데다가 리뷰 다 쓰고 나면 보여드리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양심이 좀 얼얼하다. 이렇게 배은망덕한 단어를 들입다 깔아놔도 되는 건가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끄적여 본다. 나중에 찾아가 석고대죄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간만에 뽑힌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부하다 투덜거리면서도 읽기는 또 재밌게 읽었다고 합니다…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어 가면서. 하… 나란 놈, 참 알다가도 모를 놈…)



2.


큰 맥락을 봤을 때, 이런 책들은 죄다 고만고만해 보인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여자와 남자는 처음부터 다르게 태어났다. 게다가 다른 경험을 하며 살 수밖에 없으니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대목에서, "어차피 똑같은 소리 할 거면서, 뭐하러 비슷한 책을 매번 새로 쓰느냐"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삐딱하다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잘못된 지적이라 할 수는 없다.


저자는 위와 같은 부정적 시각이 있다는 걸 마음 속에 꾹꾹 눌러담아두고 있는 듯하다. 책 서문에서부터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을 읽다 보면 여러 번의 비판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핵심을 꼽으라면 이거다.



스마트폰은 물론 인터넷도 대중화되지 않았던 25년 전에 쓰인 책으로,
현재의 여자와 남자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뭐하러 비슷한 책을 매번 새로 쓰느냐"는 비판에 대해 저자가 내놓은 답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세상이 날이 갈수록 빠르게 변하며, 가속도 그래프는 점점 가파르게 변하는 중이다. 물질적인 측면 뿐 아니라, 사람들이 공유하는 의식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어느 시대에는 도무지 용납될 수 없었던 관습도, 지금 시대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것처럼.


무릇 책이란, 그 시대를 꿰뚫는 통념을 담아낸다. 시대가 바뀌면 통념도 바뀌고, 시간의 흐름을 살아가는 인간도 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미 인쇄돼 버린 책은 그 모든 변화를 담아낼 수 없다. 그렇기에 오래된 책들 중 여전히 가치를 인정받는 것들(주로 고전에 여기에 해당)은 새로운 시대의 문법으로 보완하거나 다시 쓰곤 한다.


고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주제로 한 비슷한 이야기가 자꾸 재생산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풀이가 가능해보인다. 이 또한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려는 노력'의 한 갈래라 생각한다면.


노오오오력 말고 그냥 노력… 요즘 노력이라는 단어 쓸 때면 자꾸 신경 쓰인다.


3.


이 책을 실용적으로 보고자 한다면 심리학 전반에 걸친 입문서 정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심리, 진화심리, 발달심리, 문화심리 등 다양한 갈래의 심리학 지식을 한꺼번에 맛보기 좋게 해놓은 '심리학 정식' 같은 느낌이랄까.


심리학을 메인 카테고리로 삼고 있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생물학, 역사, 사회문화 등과도 맞닿아 있다. 그 행간에 담긴 컨텍스트를 통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 교양서 정도의 실용성은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을 것이다. 아울 성별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에 관해서도 번뜩이는 뭔가 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다름Different'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 중 어디서든 단골로 등장하는 게 바로 '성별 차이'다. 나는 '다름(차이)'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을 때, 차별이라는 놈이 싹튼다고 생각한다. 이 관점에서, 지금껏 우리 사회는 성별로 인한 차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차별'로 진화한 성별 담론은 모든 다름의 기준을 잘근잘근 씹어먹고 만다. 아무리 봐도 상관없어 보이는 주제에서도, 누군가 성적 차별을 주제로 꺼내놓으면 삽시간에 불이 붙어 주위를 홀랑 태워버리곤 한다. 수많은 기준에서 같거나 비슷한 두 사람이 오직 성별 차이로 인해 판이하게 다른 경험을 했다는 일화가 너무 흔해져 버린 현실.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


너무 간단한, 동시에 당연한 진리. 모든 사람이 그저 "남녀의 심리적 기제가 다르다"는 것 하나만 머릿속에 담을 수 있었어도, 현존하는 성별 문제 중 상당수가 애초에 생겨나지 않았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언제나 시궁… 아니, 아름답지 못하다. 저 간단한 문장 하나조차 기억하길 거부한 나머지, 일상에서 당당하게 차별을 실천(?)하는 사람을 찾는 건 참 쉬운 일이다. 너무 당연한 거라 딱히 머리로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걸까? 아니면 '다르다'고 말하는 건 쉽지만, 그걸 온전히 인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어려워서 그런 걸까?


여자와 남자의 심리적 차이를 다룬 책이 자꾸 재생산 될 수밖에 없는 씁쓸한 이유다. '다르다'는 말의 뜻을 까먹는 사람들이 자꾸 재생산(?)되니까.


아…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걸 수도 있겠구나

물론, 이 모든 심오한 이야기는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니 잊어도 된다. 순전히 재미로만 이 책을 읽어아~무 상관 없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이쪽을 추천한다.) 책에서 다룬 여자와 남자의 심리적 차이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해도 다. 그냥 '이런 게 있구나. 재밌네.' 하고 넘어가는 걸로도 충분할 거라 믿는다.


책에서 근거로 쓴 사례를 보며, "난 여잔데 안 그러는데…" 라든가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건 아니야"라며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수십 억 인간의 개성을 단 둘로 나눠진 카테고리로 나눠 놓으려다보니, '일반론'에 가까운 내용이 주가 됐을 따름이다. 그냥 흥미롭게 읽고 넘기면 그만이라는 뜻.



4.


세상사 달관한 현자마냥 잔뜩 폼 잡고 이야기하자면… 남자냐 여자냐 하는 건 태어나기도 전 엄마 뱃속에서부터 정해진, 그것도 자신의 의지는 0.001%도 반영되지 않은 선천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별 차이라는 것 역시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마땅하다. 소위 말하는, '이론적으로는'.


하지만 태어나고 보니 어이없게도, 세상이 그리 단순명료하지가 않다. 시작할 때는 분명 '그냥 염색체 하나'가 달랐을 뿐인데, 막상 살다보니 성별 '차이'를 넘어선 '차별'을 종종 접한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로 인해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큰, 때로는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의 기억을 남기기도 한다.


"태어나서 머리 굵어지고 보니 세상이 이따위로 생겨먹었다"고 일갈하면서, 땅 치고 벽 차며 한탄하고 욕해봐야 별 뾰족한 수는 없다. 더럽고 치사한 일 투성이지만 어차피 살아야 하는 거라면, 생겨먹은 꼴이 영 아니다 싶은 건 뜯어고치면서 살아야겠다고 매번 다짐할 뿐이다.



다시 평범한 일반인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살얼음판이 따로 없는 삶이 아닌가 싶다. 뭘로 먹고 살아야 할지도 팍팍한데, 차별과 역차별을 넘어 이제는 '혐오'라 불리는 날 선 단어가 만연해 있기까지 하니까. 세상 곳곳 공기 중에 떠다니는 부정적인 감정을 온몸으로 들이마시며, 언제든 혐오로 자라날 수 있는 씨앗을 저마다 품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무의식적으로 꺼낸 말 한 마디가 혐오를 만들기도 하는 시대. 그 아슬아슬함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시선에 주목하려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데 위안을 얻는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다름'에 포커스를 맞춘 책들은 꾸준히 있어줬으면 싶다. 어떤 주제, 어떤 내용이든 간에.


엄마 뱃속에서는 염색체 하나 차이로 결정된 건데, 나와보니 이건 뭐… 삶 자체가 다르더라. (feat. 나비효과)


5.


살다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도 종종 본다. 그 순간에는 참 막막하고 화가 나지만, 지나고 나서 한 발 물러서 보니 그 입장이 이해되는 경험을 한 적도 있다.


한 인간이 태어나 어떤 식으로든 '사회'를 접하기까지의 시간은,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십 년이다. 그 세월동안 쌓인 경험과 생각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가 그 사람에게서 보이게 된다. 그 가운데 내가 겪어보지 못한 조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해하기가 어려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자와 남자는 왜 늘 평행선인 걸까?



이 책은 제목 자체가 추상적이면서 난해한 질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평행선'이라는 단어를 통해 나름의 답안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여자와 남자는,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해 너무도 다른 경험과 생각을 하며 산다. 서로가 겪어보지 못한 조각이 가장 많은 '난해한 관계'의 표본이랄까. 둘의 관계가 원만해지느냐, 굴곡이 많아지느냐는 서로의 조각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


다만, 수용한다는 말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해볼 수 있다. 서로 조율해서 맞출 수 있는 건 맞추고, 양보할 건 양보하는 식. 또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가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존중해줄 수 있다면… 늘 평행선을 달린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 글을 마치려던 순간 문득 스쳐간 생각이 있어 간단하게 적어둔다. 위에서는 서로 다른 조각이 가장 많은 관계라 적었는데, 어쩌면 오히려 '아주 작은 차이'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겉으로 보이는 인간으로서의 공통점, '어쨌든 같은 인간 아니냐'라는 일종의 무의식. 만약 이 두 가지의 조합이 서로가 가진 '다름'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하는 거라면? 얼핏 보기에 작아보이는 다른 점 따위, 이해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자신하는 거라면?


그렇다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사람이 고유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건,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바로 그 '다름'이 있기 때문인 것을!


저자인 이장주 박사는 "원래 이런 제목으로 하려던 게 아니었다"며, 시장의 논리(?)를 따른 것임을 은연 중에 강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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