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의 인연, 그 모든 순간이 <달리 되었더라면>…
무릇 모든 사랑이 그런 것이라 말들 하지만, 그도, 그녀도 동의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는 앞으로의 시간이 더 중요했으니까. 서로 이해하고, 서로 아껴주며, 사랑으로 채워갈 앞으로의 시간이.
타각- 타각-
거의 완전한 어둠. 유일한 빛이라고는 모니터에서 비롯된 그것뿐. 거의 완전한 정적. 유일한 소리라고는 기계식 키보드로부터 울리는 그것뿐.
마지막 문장 뒤, 마침표를 찍은 뒤 소리가 멈춘다. 방 안은 다시 고요함으로 채워진다. 후우우- 잠깐의 간격을 두고, 깊고도 긴 숨소리가 적막을 밀어낸다. 키보드 위에서 멈춰있던 손을 움직여 곁에 있던 맥주 캔을 집어 든다. 꿀꺽- 꿀꺽- 이번에는 목울대를 울리는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정말 거슬렸다. 하지만… 도무지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얼얼하게 올라오는 취기 때문일까? 아니면 심장 언저리 어딘가의 텁텁하게 막혀버린 듯한 느낌 때문일까. 수많은 단어와 문장을 만들어내던 두뇌가 일시적으로 제 역할 하기를 거부한다.
다 마신 캔을 치워두고, 또 다른 캔을 딴다. 딸칵- 푸쉬익- 곧장 다시 들이붓는다. 무엇이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만 같은 허전함. 그 자리를 맥주로 채우려는 듯 들이붓는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다. 마신 술은 텅 빈 가슴을 지나 더 아래로 내려간다. 남는 건 붉게 물드는 눈가, 그리고 조금 더 흐릿해지는 의식.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아니, 그게 잘못이 맞긴 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아니, 잘못한 것 같지는 않다. 잘못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니, 잘못이라는 걸 정말 몰랐을까? 글쎄… 다시 한번 이어지는 자문自問에는 답이 망설여진다. 이유를 모르는 것이든, 알고도 모른 척했던 것이든, 일방적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말이 아닌 표정만 남겨진, 너무도 허무한 마지막.
말을 해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랬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매일 아침이 찾아오는 것조차 귀찮고,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짜증부터 치미는 일은 없었을 거다. 무엇을 먹어도, 무엇을 즐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툭하면 볼썽사납게 눈물 글썽이는 일도 없었을 거다.
단 한순간도 아름답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느낌이 콩깍지가 씌었기 때문이라면, 정말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사랑했다는 뜻일 거다. 아는 사람은 안다.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인연이었음을 가리키는 건지.
'눈치껏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한다면… 무어라 답할 말이 없다. 그저 늘 관심을 갖고 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하루하루가 특별한 날 같다는 느낌을 말해주고 싶었을 뿐인데. 그저… 사랑이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모든 게 너무도 이기적인 방식이었나 보다.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 조소嘲笑한다면… 그 또한 무어라 답할 말이 없다.
만약… 그 모든 순간… 한 사람이 달리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 모든 순간… 다른 한 사람이 달리 표현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일까.
한 사람은 떠났고, 한 사람은 혼자 남겨져버린, 바로 지금 이게 변하지 않는 현실인데.
캔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의 맥주를 털어버린 뒤, 화면을 바라본다. 너무도 흔한, 또 너무도 뻔한, 해피엔딩의 연애 소설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마침표 뒤 깜빡이는 커서가 아직 끝이 아니라 말하는 것만 같다. 뭐라는 거야. 끝이야, 병신아. 욕지거리를 읊조린다. 화면에게 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하는 건지 모를.
혀 꼬인 소리로 방금 뱉었던 욕설을 되뇌며, 못내 거슬리게 느껴졌던 마지막 문장을 지워버린다, 결국. 그대로 저장 버튼을 누르고, 창을 닫고, 컴퓨터를 끈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하고 만다.
창조자의 일방적 횡포로 인해 마지막 문장을 미처 갖지 못한 이 짤막한 이야기는, 한동안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미완성으로 끝나버린 어떤 흔한 인연들처럼. 다시 쓰일 수 있을지조차 기약하지 못한 채.
https://www.youtube.com/watch?v=pTucqVY8Lgw
달리 되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얼굴 비추는 햇살마저도 귀찮네요
부는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칼도 짜증 나네요
채워주세요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눈이 아프게 울어봐도 끝이 보이질 않죠
달리 되었었더라면 생각해봤나요
엄청난 인연 거슬렀는지도 모르잖아요
숨 조이는 어색함 대신 사랑한다는 말
백 번 천 번 속삭였을 테죠…
커져만 가던 나의 사랑이 불편했는지
겁에 질린 듯한 표정만 남긴 채 떠나갔죠
달리 되었었더라면 돌아갈 수 있다면
아주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덜 사랑할 것을
숨 조이듯 넘친 사랑에 행복보다 미안함
심어준 것 같아 후회돼…
달리 되었었더라면 생각해봤나요
엄청난 인연 거슬렀는지도 모르잖아요
숨 조이는 어색함 대신 사랑한다는 말
백 번 천 번 속삭였을 테죠…
지겨운 그 말…
듣기 싫겠지만…
난 그대가…
돌아온다면 참 좋겠어요…
달리 되었더라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