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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노애락애오욕,
'날것 그대로의 마음'들

by 이글로

날것 그대로의 마음.


어느날 갑자기 이 낱말 덩어리가 떠올랐습니다. 몇 번 정도 곱씹다가 얼른 메모해두었고, 결국 매거진 제목으로 쓰게 됐습니다. 아직 몇 편 쓰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제목입니다.


처음 썼던 두 편의 글에는 [들뜸], [쓸쓸]이라는 머리말을 붙였었습니다. 글의 주된 마음 상태를 두 글자 짜리 단어로 표현하면 좋겠다 싶어서 무작정 실행에 옮긴 거였죠. 그런데, 글이라는 게 참 묘합니다. 다 쓴 글을 다시 읽다 보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보입니다. 그걸 고치는 짓을 몇 번 하다 보니 더 어울리겠다 싶은 머리말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볼 때마다 눈에 밟히는 머리말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오래 전에 배운 말 하나를 떠올립니다.



희노애락애오욕 喜怒哀樂愛惡慾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기본적인 일곱 가지 감정을 가리키는 말. [날것 그대로의 마음 - 희노애락애오욕]이라고 제목을 고치면 좀 더 그럴 듯하겠다 싶었는데… 젠장, 제목 글자 수 제한에 걸리더군요. 그래서 깊이 고민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글 한 편 끄적이며 때우기로(?) 했습니다.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증오, 욕심.


쓰고 싶은 이야기 하나가 떠오르면 그 바탕에 어떤 감정이 깔려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이 일곱 가지 중 어떤 녀석이 가장 어울리는지도 함께 고민하죠. 아직 완성하지 못한 채 휴대폰 메모나 작가의 서랍에 담겨있는 글들이 부지기수. 모두 일곱 가지 감정 중 어떤 녀석이 적당할지, 답을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말이죠. 답은 어차피 제가 정하기 나름이더라고요. 사람의 마음이란 건, 수학이나 과학처럼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법. 방금 떠올린 생각 한 토막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를 정의할 수 있는 건 결국 저 자신뿐이니 말입니다.


'일곱 가지 기본적인 감정'이라 정의했지만, 사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기쁨과 즐거움, 분노와 증오 같은 것들 말이죠. 이것들의 미묘한 경계선을 긋는 데는 정답이 있을 수 없죠. 결국 제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과제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이야기에 어떤 머리말을 달아야할지… 집착할 필요가 없더군요. 그저 그 순간의 마음을 담담하게 풀어놓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는… 다 쓴 뒤에 정해도 되는 문제고, 뭘로 정하든 딱히 상관없는 문제겠죠. 결국 제 마음의 이야기를 적는 거니까요.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글이어도 괜찮을 겁니다. 아니, '날것 그대로의 마음'을 적기로 한 매거진이니, 오히려 횡설수설 제멋대로인 글이 더 어울릴지도 모를 일이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집니다.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날마다 구독해주시는 분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걸 지켜보고 있습니다. 누군가 언제든 볼 수 있는 공간이 되다보니… 저도 모르게 이 곳에 쓰는 글들은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나 봅니다.


앞으로 이 매거진에 적고 싶어지는 '날것 그대로의 마음'들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두서가 없을지라도, 맥락이 제멋대로일지라도 누군가는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 속 하소연이 떠오를 때마다 이 곳을 찾을 예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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