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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慾] 마음의 속도

혼자서만 너무 빨랐던 마음

by 이글로

초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달리기를 꽤 잘 했었습니다. 지금과 달리 몸이 가벼워서(?) 그랬나 봅니다. 그땐 반에서 키가 작은 축에 속했고, 덩치도 왜소한 편이었거든요.


기억을 애써 더듬어 보면,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 소리가 들릴 듯 말 듯할 때도 있습니다. 그땐 '빠르다'는 사실이 참 좋았습니다. 누군가를 제치고 달려 나갈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내 앞에, 양 옆에 아무도 없이 홀로 달려 나가는 그 홀가분함이 무척 마음에 들었거든요.


중학교 이후로 살이 급격하게 붙으면서부터는 그런 홀가분함을 느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맛봤던 그 속도감은 어렴풋이 기억을 맴돕니다. 그럴 때면 가끔씩, 끝없이 펼쳐진 평지를 상상하며 마음속으로 달리기를 이어가곤 하죠.


shutterstock_139712587-1024x682.jpg '마음 속 달리기'는 기분이 가라앉을 때 유용합니다.


생각해보면, 제 마음은 늘 빨랐습니다. 몸이 예전만큼 빠르게 달릴 수 없게 됐기에 더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양 옆에 아무도 없이 홀로 내닫는 마음이란 건, 거의 대부분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외롭고 쓸쓸할 때가 더 많았죠.


그걸 아는데… 잘 아는데도 또 어느날, 마음이 혼자서 달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꽤 오랜만의 일이라 미처 붙잡을 새도 없었죠. 아니, 어쩌면 붙잡을 새가 있었더라도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잡는다고 잡혀지지 않는다는 걸 몇 번이나 겪어봤으니까요.


점점 가속도가 붙는 마음을 내버려둔 채 바라보기만 하고 있을 때, '멈춰야만 하는 이유'를 듣게 됐습니다. 멈출 수 없다면 주체할 수 없는 가속도라도 자제해야만 했죠. 이미 마음이 오가고 있는 누군가의 관계를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마음의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알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안 되네요, 그게.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kArjCybqpc


그래서 지금, 좀 아픕니다.


혼자서만 너무 빠른 마음의 속도가 감당할 수 없이 들쭉날쭉 하고 있거든요.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감정임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정리해보겠다 했습니다. 그 대가로… 많이 어두워진, 욱신거리는 마음을 떠안은 채 며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로 향하는 마음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불안해집니다. 머리는 말합니다. 마음을 드러내기에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알지 않느냐고. 가슴이 대답합니다.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방법이 없겠냐고…


어느 쪽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지 확신할 수가 없네요. 어느 쪽이든 최소한 지금의 무난한 관계라도 이어가고 싶다는 욕심 때문일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네요.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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