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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 늘 엇비슷한 하루를 보내며

'매일매일'을 실천하지 못하는 어떤 이의 자기합리화

by 이글로

아침 8시 10분에서 20분 사이.

집을 나서는 순간 밀려드는 찬 공기에 점퍼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합니다.


환승 한 번. 총 11개 역. 그리 멀지는 않지만 유동 인구가 제법 되는 출근길을 반복하죠.

저마다의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의 대열에 몸을 맡긴 채 머리로는 생각 하나를 다집니다.


'오늘은 퇴근하면 꼭 어떤 글이든 하나라도 써야지.'


어떤 날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바쁜 하루.

또 어떤 날은 도무지 집중이 안 돼 멍하니 보내는 하루.

그렇게 퇴근 시간이 되면 똑같은, 하지만 아침보다 아주 조금 더 붐비는 11개 역을 지나갑니다.


집에 도착해 애매한 시간을 재촉해 저녁을 챙겨먹고나면 몰려오는 노곤함.

뭐 하나라도 글을 쓰겠다는, 아침에 했었던 다짐은…

글쎄요.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새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 덕분에 허탈함만 남곤 합니다.


잠 한두 시간쯤 포기하면 뭐든 하나라도 쓸 시간이야 충분할 테지만,

가뜩이나 새벽에 잠을 설치는 일이 잦은 요즘이라 그 한두 시간조차 아쉽습니다.

글을 쓰고픈 꿈은 분명 소중하지만, 당장 살아야 할 '내일'이라는 현실이 녹록치 않은 탓이죠.


그렇게 씁쓸함을 곱씹으며 잠을 청합니다.

내일은 꼭 다짐을 지키겠노라 마음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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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꽤 오랫동안 그래왔습니다.


어떤 날은 문득 소설을 쓰고 싶어져 거창하게 설정을 잡고 시작했지만,

한참 써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어떤 날은 에세이를 써서 독립출판을 해보겠다며 글을 써 모았습니다만,

열댓 개쯤 쌓인 글들을 보며 이걸 어떻게 엮어야 할지 아득해지고 말았죠.


거창한 뭔가는 느낌이 올 때 하고, 평소에 일기처럼 글을 쓰며 감을 유지하려 했습니다만,

그 역시도 어느 순간 하루이틀 미루다가 놔버리기 일쑤입니다.


스스로의 게으름을 탓하고, 스스로의 의지박약을 탓하고,

그러다가 내가 '꿈'이라 불렀던 것이 이토록 별 거 아닌 것이었나 싶은 자괴감마저 듭니다.

매번 반복되는 끈기없음과 자꾸 딴 곳으로 뻗어가는 산만함이 자존감에 깊은 스크래치를 내곤 했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가… 불현듯 깨닫습니다.

끝을 맺지 못하고 방황하기 일쑤이지만, 그래도 지금껏 썼던 것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지 않느냐고.

평일이 영 녹록치 않다면 주말을 이용해서 느릿하게라도 채워가면 되지 않느냐고.

어차피 나란 놈은, 뭐가 됐든 한 마디라도 쓰고 있을 때 행복한 놈이 아니냐고.


그렇게 스스로를 변호하며,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욕심을 다시 끄집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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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할 때도 저는 아득바득 인상을 써가며 "한 개만 더! 한 개만 더!"를 외치지 않는 타입입니다. 딱 힘들다 싶은 느낌이 오면 일단 쉬고, 차라리 잠깐 쉰 다음 한 세트를 더 해버리는 게 낫다 싶어서 말이죠.


운동을 전문으로 공부한 건 아니기에, 이론상으로 좋지 않은 방법일지도, 혹은 틀린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그 방법으로 운동을 하면서 덩치 좋다 소리를 들어왔고 건강도 그럭저럭 유지해왔죠.


그게 저에게 잘 맞는 방법이라면, 글쓰기도 결국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쉬고 싶을 땐 쉬고, 대신 해야겠다 싶을 때 좀 더 많이 쓰고.

굳이 하루 한 편이라고 못박아서 제한을 둘 게 아니라… 생각이 나지 않을 땐 아예 손놓고 쉬고, 이것저것 마구 떠오를 땐 쓰고 싶은대로 쓰는 방법 말이죠.


규칙적으로 뭔가를 하는 게 습관을 들이기엔 최적의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습관이라는 거, 저는 하루 단위가 아니라 좀 늘어진 간격을 두고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한 편 썼네요.

별 거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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