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한 번 더 소리내 불러보고픈 그 말.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을 위하여 좌석에 설치된 안전벨트를 착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천천히,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나갈 즈음, 눈을 감습니다.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안전벨트는 자리에 앉자마자 해뒀으니까요. 늘 그랬던 것처럼.
눈을 감은 채, 지금 지나치고 있을 곳들의 풍경을 떠올립니다. 지금쯤… 다리를 건너 가끔씩 구경가곤 하던 백화점을 지나쳤을 겁니다. 지금은… 최근 부쩍 자주 갔던 익숙한 동네를 지나 도시 외곽으로 접어들었겠네요. 그 다음엔 나란히 늘어선 공장 몇 군데를 지나쳤을 거고, 속도가 줄어든 다음 우회전, 다시 좌회전……
몇 번이고 지나갔던 길이라 보이지 않아도 다 알 듯합니다. 사실, 눈을 뜨더라도 바깥은 어둠이 깔려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질끈 감은 눈을 뜨지 않는 건, 창밖으로 지나치는 익숙한 모습들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떠나도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을 풍경들이지만,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보러 올 수 있는 풍경들이지만… 떠나는 그 순간, 멀어지는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왠지 서글퍼지거든요.
사실, 큰 의미 둘 것 없는 이별일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앞으로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할 이별이기도 하죠.
대문 밖까지 나와 배웅하는 어머니에게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는 아버지에게 건강 챙기시라 무뚝뚝한 인사를 하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 멀어져 가는 아들의 모습을 야속하게 여기시진 않았을까요.
… 아니요, 아마 다 알고 계실 겁니다.
사실은 무척이나 돌아보고 싶다는 걸.
하지만 한 번 돌아보면 몇 번이고 계속 돌아보게 될까봐 애써 참는다는 걸.
원래 그렇게 잔정 많고 미련 많은 아들이라는 걸…
저에 대해 누구보다도, 때로는 저 자신보다도 가장 잘 아는 분들인걸요.
그리 먼 거리도 아니건만, 왜 그리 자주 오지 못하는지 생각해봅니다.
자주 오지 못해 떠나는 순간이 서글픈 건지,
떠나는 그 순간의 서글픔이 싫어 자주 오지 못하는 건지.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함에 괜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속도를 줄여 인터체인지 곡선 도로를 타고 도는 버스.
곧게 뻗은 길로 들어서 점점 속도가 붙는 걸 보니, 곧 톨게이트를 지날 모양입니다.
결국, 눈을 뜨고 맙니다.
순간 야속하게 지나치는, 점점 멀어지는 톨게이트.
그 위에 적힌 고향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되뇌입니다.
다시, 눈을 감습니다.
속에서 울컥 치고 올라오는 뜨거운 무엇이 흘러나올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