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미래... 시간이 흘러도 '스토리'는 죽지 않는다
오전 7시. 눈꺼풀을 반 정도만 열어둔다.
'경계의 중심'이란 놈은 미묘하다.
어느 한 쪽으로 조금만 넘어가도 승패가 나눠지는,
마치 줄다리기와 같은 모양새라 할까.
적당히 가운데 즈음 정도를 유지하던 눈.
거울 없이 내 눈을 볼 수 없으니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어쨌건 오늘은 '열리는' 쪽이 이겼다.
일을 그만둔 후로 달라진 건,
하루 일과라는 게 딱히 정해져 있진 않다는 것.
서울 자취방에 있던 때였다면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단골 카페에서 한껏 게으름을 피웠을 터다.
생활비를 아껴보고자 고향에 내려와있으려니
딱히 갈만한 곳이 없다.
내리쬐는 뙤약볕 탓에 딱히 나가고 싶지도 않지만.
휴대폰을 꺼내들고 웹툰이나 웹소설을 뒤적인다.
스토리에 주목한 감상을 적어보기로 결심한 뒤로는
다른 때보다 한결 능동적이 됐다.
타인이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생각보다 무척 즐거운 일이다.
세계관(世界觀).
판타지류를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익숙할 단어.
작품 내 전체적인 설정을 아우르는 말.
허나 본래 의미는 다소 심오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일정한 시각' 정도면 될까.
즉, 누군가의 이념이나 사고방식을 포괄한다는 뜻.
철학 등에서 사용하는 단어란다.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 보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써먹을 수 있다.
하나의 '세계관'을 어떤 '세계관'으로 풀어내는가.
앞의 것을 설정으로서의 개념,
뒤의 것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보면
어느 정도 뜻이 통한다.
어떠한 형태의 스토리일지라도
세계관이 빠지는 일은 없다.
그리고 바로 이로 인해
작품들은 각각 고유의 향기를 가진다.
같은 언어로 쓰여졌더라도
각기 다른 생명을 부여받는 셈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스토리의 비중은 컸다.
역사나 사회는 물론 문명의 발전에도
면면을 살펴보면 '스토리'가 녹아있곤 한다.
건방지게 예언 한 마디 하자면,
다가올 미래에도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수많은 고전들이 지금껏 회자되고,
여전히 삶 곳곳에 깨달음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모습이 그 근거라 하겠다.
인간보다 훨씬 긴 수명을 가진 '이야기'의 본질은
시간선을 아우르며 인간의 삶에 관여할 것이다.
트렌드에 맞춰 형식이 바뀔 수는 있을지라도.
이런 이유로,
스토리의 감상을 적는 이 작업에도
의미를 부여해보고자 한다.
앞으로 적어나갈 글들에도
'나 자신의 세계관'이 담길 수 있도록.
또, 궁극적으로는
내 세계관을 담은 스토리를 써볼 수 있도록.
나의 세계관으로 타인의 세계관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스스로 정한 내 작업의 본질이다.
여러 모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다음 바통을 이을 작품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거의 좁혀진 두세 개 정도의 후보작을 미뤄두고
잠시 또 게으름을 피우러 간다.
또다른 스토리를 발견하러 가는 길.
그건 언제나 즐거움의 탐닉이다.
자, 오늘은 또 어떤 스토리를 만나볼 수 있을까.
또 어떤 세계관을 엿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