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을 알기에 붙잡지 않았다. 그리고 기적처럼 돌아왔다.
그 마음이 어떤지 알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꿈이 얼마나 간절했던 것인지 알기에 아무런 위로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마디 말도 없이 묵묵히 커피잔만 홀짝였다.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모두. 그렇기에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만남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세상 그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부지불식 간에 그렇게 되어 있었다.
한편으론 같지만 또 한편으론 다른 꿈을 꿨다. 얼마나 절실히 이루고 싶어했는지를 서로가 알았기에, 가끔 소홀해질 때에도 탓하거나 보채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리 잦지 않았던 만남도, 자잘했던 이야기들도, 서로에 대한 비판과 응원까지도 더없이 소중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했었을까. 여전히 할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이제 그만하려고.
짤막한 그 한마디. 단호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결심을 굳힌 듯했다. 잠시 마주쳤던 시선이 왠지 부끄러워, 다시 커피잔으로 향했다.
말리고 싶었다. 그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선뜻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 말을 하기까지 혼자서 얼마나 고민했을지를 알기에. 더없이 소중했을 꿈이었겠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느낀 절망이 더 크게 다가왔기에.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라고, 그리 믿어야 한다. 그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알아야하니까.
그래도... 일하면서 틈틈이 계속 해볼 거야.
서운했지만 반가웠다. 여전히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있을테니까. 잡을 수 없어 괴로웠지만 더 멀어지지 않는다는 걸로 만족했다. 비록 나란히 함께 가지는 못할지라도, 그거면 충분했다. 적어도 지금 나에게는.
가지 말라고. 조금만 더 같이 가자고. 목 언저리까지 치밀어올랐던 그 말은 결국 하지 못했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현실의 압박을 대신 짊어져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일 게다.
대신, 힘겹게 지은 미소를 보여줬다.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고, 힘겨운 티를 최대한 감추려 애쓰며 웃어보였다. 그게 그 날의 마지막이었다. 끝내 서로의 진심을 전하지 못한 마지막.
10년이 훌쩍 넘었다. 늘 마주하던 그 카페는 없어졌지만, 다행히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곳을 찾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거면 충분하다.
기적처럼 돌아온다는, 소설 같은 일이 이젠 실감이 난다. 거짓말처럼 다시 마주 앉았다. 비슷한 분위기였던 카페는 비로소 10여 년 전 그곳과 같은 공간이 됐다. 못내 아쉬웠던 그 날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듯하다.
여전히 난 변한 게 없다. 현실의 벽을 넘어 우뚝 서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깔려죽지도 않았다.
고개를 들어 마주본다. 음... 변한 건... 있다. 묘하게 달라졌다. 세월에 쌓여간 모든 것들이 조심스레 갈무리된 모습이랄까. 하긴, 변한 게 없을 거라는 기대는 욕심이었겠지. 그 눈에 비친 내 모습도 변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밝은 표정이라는 거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따금씩 근황을 듣고는 있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고, 쉬면서 다음 할 일을 생각하고 있노라고.
묻고 싶었다. 당연히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해도 될까?그래도 되는 걸까?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망설이게 된다. 변함없이 보잘것없는 내 모습을 보며 입술만 달싹이게 된다.
나, 다시 해보려고.
고개를 든다. 내 얼굴을 볼 순 없지만 놀란 눈이 되었다는 걸 안다. 그럴 수밖에. 어떻게 얘기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을 먼저 해줬으니까.
올해까지만이라고 했다. 이젠 타협이란 걸 할 줄 알게 됐다고. 언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는다. 전혀 억지스럽지 않은 웃음. 마주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진짜 웃음.
앞으로도 한동안 우리는 힘겨울지도 모른다. 아마 힘들겠지. 10여 년 전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춥거나 외롭지는 않을 듯하다. 서로를 이토록 잘 아는 동행이 함께 할테니까.
짧지 않은 시간동안 각자의 방식대로 성숙한 우리들이기에, 이제는 좀 더 서로에게 능숙한 온기를 나눠줄 수 있을 것이다. 기적같은 이 재회를 이루게 해준 누군가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