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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by 이글로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습니다.


여유롭게 둘러볼 생각은 아니었어요. 며칠 전부터 벼르고 있던 책 한 권, 그보다 조금 더 전부터 망설이고 있던 또 한 권. 그렇게 두 권을 집어들고 바로드림으로 결제해 들고 나왔죠.



지난 주말, 살짝 후회했습니다.


침대와 한몸이 된 채 바라본 책상 한 켠, 덩그러니 놓인 책 두 권. 그 바로 옆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책 십수 권. 읽다 만 책, '제대로' 안 읽은 책, 아예 안 읽은 책이 수두룩한데 또 책을 사야했냐?


스스로를 타박하며 한숨을 쉬었고,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울적해서 주말 내내 침대에 붙어 지냈어요.



오늘, 어떤 글을 읽었습니다.


지랄같은 일교차 덕분에 감기 기운이 느껴져서, 약 하나 먹고 거실에서 뒹굴거리다가 본 글이었는데요. 단 한 문장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당신이 고른 그 책은 우연히 만난 책이 아니다.


지난 주에 사왔던 책 두 권. 그래요, 그건 절대 우연히 만난 책이 아니었어요. 도서검색대를 이용해 위치를 찾아서, 옆구리에 끼고 모바일 결제를 할 때까지 고민하다가 산 책이었죠.


분명한 목적을 갖고 현명하게 샀다고 생각했던 책 두 권. 그것 때문에 침울한 주말을 보냈던 건 아닐 거에요. 다시 생각해도 그건 분명해요.



지금, '이유'를 붙여주기로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권의 책을 보면 죄책감 같은 게 느껴져요. 다 읽지 못한 다른 책들에 대한 죄책감, 그래서 얼마나 오래 펼쳐지지 못할까 싶은 두 권에 대한 죄책감.


하지만 그건 결국 내가 짊어질 몫. 그저 내 선택에 의해 낯선 곳으로 끌려와 덩그러니 놓여졌을 뿐인 그들에게는 죄가 있을 수 없겠죠.


그래서 그 두 권에 이유를 붙여주기로 했어요. 서점에서 잘 지내고 있던 그들이 하필 그 날 내게 와야 했던 이유. 굳이 이 글 속에 담아낼 필요는 없는, 지극히 사소하지만 '그냥'보다는 성의 있는 그런 이유를.


그 이유가 있는 한, 우연히 만난 게 아닌 '인연'으로 내게 온 것일 테니까. 인연으로 만난 한, 언제가 됐든 펼쳐들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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