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막막함 뿐이지만, 느리게 걷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어디선가 '살면서 책 한 권은 써 봐야 하지 않겠냐'라는 말을 보고는 무척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순간 어떤 이야기들을 쓰면 좋을지가 촤르륵 떠올랐고, 곧장 손에 잡히는 빈 노트를 펼쳐 글자들을 적어내려갔었죠.
그 후로 쓰고 싶은 것들이 떠오를 때마다 틈틈이 적어두었습니다. 전체적인 콘셉트를 뭘로 할 것인지, 어떤 의도로 그렇게 하고자 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봤고, 책 제목을 뭘로 할지도 생각해봤죠. 독립출판 프로세스를 이용할 예정이라 아이디어를 제한할 필요가 없다는 게 좋더군요.
목차나 머리말 이후, 가장 첫 장에 담을 이야기 하나는 확고하게 정했습니다. 몇 번이고 다듬었지만, 여전히 볼 때마다 다듬게 되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밖에 시간 날때마다 하나씩 모아둔 글조각이 어느새 20편을 조금 넘었네요. 아직 매끄럽게 다듬은 건 몇 편 안 되지만…
아직 부족하다 싶긴 합니다. 독립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이상 '책 한 권'이 어느 정도 분량이어야 하는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종이책을 즐겨 구입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한 권이라는 단위에 대한 나름의 기준은 있거든요.
저는 지적인 이야기, 깊이 있는 대화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지식이 많거나 체계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낭설, 개인적인 견문, 혹은 상상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편이죠. 덕분에 원론적이거나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때도 많지만요.
문제는, 대화 취향이 이렇다 보니… 쓰고자 하는 책의 콘셉트를 정하는 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는 겁니다.
지식 면으로 도움이 되는 책? 분명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든 '깨달음'이라는 걸 줄만한 책? 글쎄요. 아닌 것 같네요. 그럼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책? 이것도 거리가 먼 이야깁니다.
흠…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책' 정도면 그럭저럭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무래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는 종류의 책은 아닐 듯합니다. 대부분은 소소한 일상으로 채워질 것 같고, 중간중간 흐릿하게 남아있는 과거사들과 그에 대한 감정을 뱉어놓는 글이 들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완성되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는 법이지만요.
빈 노트를 펴고 글씨를 적어내려가던 그 때를 '첫 삽을 뜬 날'로 규정한다면, 벌써 3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가끔은 조바심이 날 때도 있죠. 이렇게 하루하루 미뤄지다가 결국, 현실에 치인 꿈으로 남아 계속 현실에 치이기만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하지만 좋은 쪽으로 믿어보려 합니다. 한없이 느리긴 하지만, 이 무거운 걸음걸음도 모두 과정인 거라고. 스스로 만든 무기력에 사로잡히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다독이면서요.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카페에 나와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근 한 달간 현실에서의 문제에 신경을 기울이느라 책이고 글이고 거의 손에 잡지 못했습니다. 지적인 게으름, 감정적인 나태함이 습관으로 굳어지기 전에 쉬고 있던 한 걸음을 다시 딛어봅니다.
오늘의 넋두리는 여기까지.
구글 드라이브를 열고 '독립출판 작업' 폴더를 열어야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글을 하나라도 더 쌓아놓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