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던 그 손'의 헌신이 있었을 뿐.
아침 8시. 알람이 울립니다. 평일보다 1시간 늦게 맞춰놓은 '주말용' 알람.
다른 때 같으면 귀찮기도 하고 딱히 일어날 이유도 없으니 다시 잠들기 일쑤지만, 그 날은 달랐습니다. 다음날 점심에 형의 상견례가 예정돼 있는 덕분에, 아침 일찍 부모님이 올라오실 예정이었거든요. 정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인지라… 하루 온종일 바빠야 하는 토요일 아침입니다.
간단하게 물 세안만 한 뒤, 거실에 깔려있는 매트와 이불을 가지런히 접었습니다. 돌돌 말아 옆구리에 야무지게 끼웠지만, 부피가 꽤 커서 금세 팔이 아프더군요. 어쩔 수 없이 그냥 양팔로 껴안듯 들고 집을 나섭니다. 아, 킬링타임용 태블릿도 챙겨서 말이죠.
걸어서 약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크린토피아. 꽤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건만, 이미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빨래를 돌리고 있더군요. 빈 세탁기 하나를 골라 매트와 이불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가동 시작! 세탁과 건조, 각 30분씩 총 1시간. 매장 한편에 놓인 의자에 편안히 앉아 들고 온 태블릿으로 게임을 하며 기다립니다.
500원짜리 동전 15개. 7,500원으로 집에서 빨기 까다로운 녀석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건 꽤 괜찮은 투자가 아닐까 합니다. 모름지기 이불은 발로 꾹꾹 밟아 빨아야 제맛이긴 합니다만… 서울살이에서 그러기란 쉽지 않죠. 다 빨고 나서 말리는 건 또 어떻고요.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보송보송해진 매트와 이불을 침대 위에 잠시 놔두고, 잔뜩 쌓인 세탁물 바구니를 낡은 통돌이에 털어 넣습니다. "고생이 많구나. 몇 달만 더 버텨다오."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세탁기를 돌려놓고, 거실 바닥청소를 시작합니다. 기껏 돈 들여 빨아온 녀석들을 깔기 위해서는 바닥도 깨끗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묵은 먼지를 쓸어내고 걸레질까지 마친 다음, 얼룩덜룩해진 걸레를 빨아 널어놓고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습니다. 아! 마침 빨래가 딱 끝났군요. 거 참… 오늘따라 쉴 틈도 없이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네요. 팡팡! 털어서 건조대에 가지런히 널어놓고 에어컨을 제습 모드로 가동합니다.
이제 좀 쉬려나~ 싶었더니 이번엔 현관 근처에 재활용 쓰레기 더미가 눈에 밟힙니다. 기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야지, 싶어 반쯤 혼이 나간 몸을 이끌고 땡볕 아래로 나가 분리수거까지 끝냈습니다. 드디어 숨 돌릴 시간이 생겼네요. 적당히 식어 미지근해진 물로 녹차 한 잔을 타서 마시며 잠시 휴식!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집안일이라더니… 이 자그마한 자취방에 뭐 그리 할 일이 많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하긴… 평소에 부지런히 치웠다면 이렇게 땀 뻘뻘 흘려가며 거사(?)를 치를 일은 없었겠지만요. 다 자업자득인 거죠, 뭐.
고향을 떠나 자취생활을 한 것도 어느덧 10여 년이 넘었습니다.
여전히 서툰 것 투성이지만, 저만의 방식으로 살림이라는 걸 갖추고 꾸려나가고 있죠. 문득 스무 살, 대학 생활과 함께 시작했던 자취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그땐 정말… 자잘한 것 하나까지 엄마에게 물어보느라 전화에 불통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땐, 인터넷 검색보다도 '엄마 찬스'를 훨씬 많이 썼었습니다. 글쎄… 엄마가 수십 년간 관리해왔던 널찍한 이층 집은 언제나 깔끔하고 모든 게 원활하게 돌아가는 공간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무 살 이후 한 해 한 해 자취 이력을 쌓아가면서. 어느덧 서른을 넘겨 그때에 비하면 훨씬 많은 것들을 혼자 알아서(혹은 인터넷을 찾아서) 할 수 있게 되면서. 출장으로 2~3일 정도만 집을 비워도 난장판이 되는 걸 경험하면서. 그 시절 '우리 집'은 어떻게 그리 깨끗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합니다.
사실… 답은 뻔합니다. 어릴 적에는 당연하게만 여겨왔던 것들. 그중 무엇 하나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는 사실. 모두 다 그 '누군가'의 헌신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오랫동안 닦지 않아 기름때가 덕지덕지 눌어붙은 가스레인지를 힘주어 닦으며, 불현듯 치미는 한 토막 깨달음을, 꿀꺽- 삼켜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