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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함'일까?

아니, 그게 '나의 행복'일 거라 믿는다.

by 이글로

치열하게, 주위의 누구에게 말해도 인정해줄 만큼 부지런하게 살았던 때가… 있긴 했다. 워낙 짧았고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긴 했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엄청나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이대로 영영 뒤처지고 마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과 두려움을 한아름 떠안고 지내던 휴식기가 끝났던 게 대략 1년을 조금 넘은 정도니까.


그땐 정말, 글자 그대로 '남아도는 시간'에 대체 뭘 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래, 그렇게 펑펑 남는 시간에 뭐 하나라도 똑부러지게 해뒀다면 어떻게든 이득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땐… 불안정함에서 우후죽순처럼 돋아난 자괴감에 발목을 채여 무엇에도 흥미를 붙이지도, 집중하지도 못한 채 보냈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그때의 막막함이 희미해진 시점. (생각해보면 '망각'이라는 건 정말 축복이 맞는 듯하다.) 학교를 떠나 사회라는 곳에 발을 디딘지도 얼추 6년을 넘었다.


어차피 남은 삶도 서툰 실수와 배움, 그리고 깨달음으로 채워가야 할 판에 그리 길지도 않은 햇수 따위 세는 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나름대로의 '주관'이라는 걸 세우기 위한 터를 닦기엔 썩 괜찮은 시점이란 생각도 든다.




언젠가 한 번 썼던 것 같긴 하지만, 난 천성적으로 썩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다행히도 한없이 게으르기만 한 건 아닌지, 빽빽하게 채워진 스케줄을 소화하며 보람을 느낄 때도 있긴 하다. 다만 그걸 일상처럼 반복하는 건 뭐랄까, 내겐 아귀가 맞지 않는 삶이다.


대학 시절 잠시 연이 닿았던 한 교수님이 '노동의 신성함'에 대해 열정적인 견해를 들려주셨던 기억이 난다. 2~3일에 한 번 꼴이나마 전화 한 통씩이라도 하려 애쓰는 요즘, 어머니는 "사람이란 무릇 일을 해야 하는 법"이라며 누차 강조하신다.


물론, 격하게 동의한다. 아니, 설령 반박할 논리가 있더라도 나는 할 수가 없다. 일이 없던 시기의 불안함을, 넉넉하다 못해 흘러넘쳤던 시간을 펑펑 낭비하고 살았던 내 모습을, 흐릿해졌다 해도 아직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 땐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일을 할 때 하더라도, 균형을 잃고 싶지는 않다. 늘 뭔가에 쫓기듯 바쁜 일상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들을 아쉬워하는 매일을 살고 싶지는 않다.


정반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난 시간 동안 꽤 봐왔고, 당장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보고 있다. 견딜만 한 것일 수도, 힘들지만 그 뒤의 열매를 목표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건 그들은 그들의 가치관을 추구하는 것일 테니, 굳이 침범해 훈수를 두고 싶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나를 침범하게 두지도 않을 테고.


지금도 종종 만나는 친구 중 하나는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이야기한다. 항상 새로운 기회를 찾아다니고, 부지런함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를 보며 경외심을 느꼈던 적도, 내 스스로의 삶에 경종을 울린 적도 꽤 있다.


하지만 그때 뿐이다. 결국 나는 내가 추구하는 궤도로 돌아오고 만다. 주어진 일은 열심히 하되, 적당한 여유를 갖고 편안함을 찾으며 살고자 하는 '나만의 궤도'로.




"실례인 줄은 알지만…"이라는 '상투적 예의'와 함께 연봉을 먼저 묻던 어떤 짧은 만남이 있었다. 덕분에 그 당시엔 속이 꽤 쓰렸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길게 이어질 리도 없는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굳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수준에서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꽤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 수 있으니,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 싶다.


한때는 '내로남불'과 비슷한 종류의 자기합리화나 변명이 아닐까 싶어 글로 쓰는 것만은 꺼려왔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작은 확신이 생겼다.


나는 결코 안일한 게 아니라는 확신. 오히려 내 기준에서의 행복을 정의하는 방법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을 뿐이라는 확신.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中


요즘 틈틈이 읽고 있는 책, <월든>의 저자처럼, 인생의 일부분을 문명사회로부터 멀어져 살아가고자 하는 용기나 각오, 심오한 가치관 같은 건 없다. 아니, 언젠가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지금은… 없다.


하지만, 초저녁의 고즈넉함을 느낄 줄 아는 감성과, 시원한 커피 한 잔과 책 한 권을 두고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소박함 정도라면…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복잡하기 짝이 없는 메트로 시티의 한복판에서 적당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 가격의 셋방살이일지라도.


이런 소박함 속에서 '행복'이라는 난해하고도 귀중한 말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천혜의 행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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