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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Nov 09. 2018

우산 움막 속의 꼬맹이

다시 곁으로 오지 않을, 어린 날의 그 아늑함

유난히 피곤했던 하루. 하지만 꽤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창밖의 세상을 골고루 두드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참동안을 뜬눈으로 누워있다.


눅눅한 습기와 서늘한 촉감, 선뜻한 추위. 비와 함께 오는 반갑지 않은 객(客)들로부터는 멀어질 수 있는 공간. 자그마한 창가에 머리를 향하고 누워, 우사(雨師)가 연주하는 불규칙한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문득 떠오르는 '아늑함'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본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갔다 돌아왔을 때 집에 아무도 없던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땐 슬그머니 화가 나곤 했다. ('어린 나'의 기준에서 엄마는 항상 집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휴대폰도 없고, 도어락도 없고, 열쇠 복사본도 없었다. 하긴, 열쇠가 있었던들 나같은 덜렁이 꼬마에게 맡길 수는 없었겠지만.


아무튼 이런 이유들로, 집에 왔을 때 현관문이 잠겨 있으면 마당을 서성이며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곤 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을 빙빙 도는 단순한 소일거리마저 할 수 없었다. 현관 앞에 우두커니 앉아, 마당의 돌바닥을 때리는 빗방울을 멍하니 구경하는 게 최선이었다.


꽤 세찬 빗줄기에 바람까지 불던 어느 날. 추위를 견디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꼬맹이는 마당 한 켠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는 한 토막 공간을 찾아냈다.


현관 옆 가지런히 놓인 장우산 두세 개를 펴서 포개놓고,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지만 마침 주머니에 들어있던 고무줄로 손잡이들을 한데 묶었다. 그렇게 만든 우산 장막으로 바람을 막으니 제법 견딜만해졌다.


우산으로 급조한 움막 속 자그마한 공간. 꼬맹이 하나가 들어가기엔 안성맞춤이었던 공간. 그 어설픈 아지트에 몸을 숨긴 채 엄마를 기다리던 날. 우산 장막을 때리는 빗방울과 바람소리를 듣던 시간도, 어느새 돌아온 엄마가 우산 움막을 휙 들어올리고는 "무슨 궁상이냐"며 잔소리 하던 그 순간까지도. 참 아늑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는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했을 단어를 지금의 기분과 연결짓는 걸 보면, 그 어린 날 느꼈던 기분이 여전히 내 몸과 마음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그 날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버린 날.

이제는 우산으로 조잡한 움막을 만들어가며 마당에서 엄마를 기다릴 일도 없고, 그 공간 안에 들어갈 만큼 몸집이 작지도 않다. 그것은, 어린 시절 그 날 느낀 것과 같은 아늑함은 두 번 다시 내 곁으로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일 게다.


그저 오늘처럼, 그 날과는 사뭇 다르지만 똑같이 '아늑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 그 안에서 그리운 과거의 한때와 최대한 비슷한 조각을 찾아내려 애쓰는 것. 아마 꽤 커버린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어느새 글 한 편이 돼 간다. 잔잔하게 멀어져 가는 아쉬움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여전히 오지 않는 잠을 재촉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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