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하며 논다, 오늘도

'쫓기지 않는 삶'에 관한 궤변(?)

by 이글로

그런 농담이 있습니다.


'할 일이 없으면 그냥 놀고, 할 일이 많으면 불안해하며 논다'라는.


아니, 농담이 아니라 현실인가…? (이미지 출처 : 워니 作 <골방환상곡> 中)


농담이든 현실이든 간에, 최근 얼마 간의 제 생활이 딱 그 꼴이었습니다.


2달 전쯤이었나.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간만에 의욕이 활활 불타오르는(?) 일을 하나 찾았죠.

마침 시간도 여유 있겠다, 제대로 한 번 도전해보자 싶었습니다.


지원서 양식은 대략 열댓 개 정도 질문에 '가급적 구체적으로' 답을 써야 하는 구조.

딱히 마감 날짜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세월아~ 네월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보통 이런 기회는 대개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인 법이니까요.






초안은 꽤 빠르게 썼습니다.

써놓고 보니 구글 문서에 폰트 크기 10pt 기준으로 약 13페이지 정도였는데, 어느 하루 오후 두세 시간 정도 들여 다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평소 손이 꽤 느린 편이라 스스로도 신기하게 여겼을 정도였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빼꼼 쳐들고 만 거죠.


브런치나 블로그면 일단 써놓고 나중에 고쳐도 되지만,
이건 아니잖아?
기왕이면 최대한 잘 쓰는 게 좋지 않겠어?
딱히 기한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대개 초안이라는 건 생각나는 대로 휘갈긴 다음, 어설프게 이어놓는 수준입니다.

마음에 들기 어려울 수밖에 없죠.

그중에서도 한 번 전송하고 나면 다시 고칠 기회가 없다는 점이… 가장 신경 쓰이게 하는 이유였습니다.


이후 한동안, 외출할 때마다 노트북과 필기구를 가방에 넣어 다녔습니다.

약속이 있는 날이면 몇 시간 전쯤 먼저 움직여 약속 장소 근처 카페에 자리 잡은 채 글을 고치곤 했죠.

집에 있으면 자꾸 게을러지는 탓에, 아침 일찍 동네 스타벅스로 나가 몇 시간씩 노트북을 펼쳐놓고 퇴고에 매달리다 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즈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진전은 거의 없었습니다.

진전은커녕 오히려 초안으로 썼던 부분을 완전히 날려버린 것도 있었죠.


마음은 늘 완성본에 가 있는데, 늘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제출할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아예 포기할까 싶었던 적도… 솔직히 없진 않았죠.


하하하하하하…


그렇게 미적거리면서 시간은 자꾸 흘렀습니다.

가방은 늘 메고 다녔지만, 글을 쳐다보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불안함 때문에 편치 않으면서도, 도무지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아 딴짓으로 채우던 시간도 꽤 많았어요.






나태함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으로 바뀔 즈음, 문득 친하게 지내는 형님 한 분이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쫓기지 마.


최근에 그 형님을 찾아봴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불안한 상태로 노는 기분'에 대해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답으로 여러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쫓기지 말라'던 한 마디가 유독 자꾸 생각나더군요.

귓가인지, 뇌리인지, 마음 어딘가 인지.

정확한 주소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진득하게 자리 잡은 게 분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야 하는 일'을 부여잡고 삽니다.

개중에는 '먹고사니즘'과 관련된, 외압이 있는 것도 있고, 스스로 만들어 부여한 것도 있죠.

하지만 어떤 일이건 간에, '쫓기는 기분'에 사로잡히면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타인과 약속된 '데드라인'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지키는 건 기본이 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죠.

시간이든, 장소든, 방법이든.

즉, '쫓기는 기분'에서 벗어나는 건… 모두 스스로에게 달린 일이라는 겁니다.



여담입니다만, 저는 한 번 나태함에 빠지면 계속 나태해지는 타입입니다.

반대로 뭔가 한 번 시작하면 탄력을 받아 다른 일을 계속 이어가는 타입이죠.

말을 만들자면, 근익근 태익태(勤益勤 怠益怠)랄까요.


이 두 가지는 자석의 극과 극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뭔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어 멍~해지는 적도, 방바닥과 한 몸이 돼 나태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튕기듯 일어나 잔뜩 밀린 일을 해치운 적도 있거든요.


… 저만 그런 게 아니라고 해줘요.


다행히, 아직까지 데드라인은 꼭꼭 지키며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 스스로와의 약속은 꽤 자주 미루고 어겨서 문제지만요.


나름 반성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태익태(怠益怠)가 시작되는 경계점에 예민해지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 경계심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때로는 '어느 정도 의도된 게으름'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그건 '나태함'이 아닌 '여유'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요.






수많은 의지와 이해가 계속 충돌하는 세상.

모두가 윈윈(Win-Win)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만…

제 눈에는 여전히 제로섬(Zero-Sum)이 더 많아 보이는 세상이죠.


때문에 실패와 좌절은 언제나 수많은 삶들의 가까운 곳을 서성이곤 합니다.

언제든지 삶을 물들이거나 집어삼킬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득 품은 채 말이죠.


그것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면,

차라리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를 그것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분명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유하자면 백신을 미리 접종해 자칫 치명적일 수 있는 큰 병을 예방하는 것과 같달까요.



앞으로 한동안은 '쫓기지 마'라던 그 한 마디를 곱씹고 좇으며 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 합리화'로 출발했던 생각을,

'평생 불안함에 쫓기며 살지는 않기 위해서'라는, 제법 봐줄 만한 논리로 조각해 가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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