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글로 Sep 08. 2019

작심, 또 한 번 마음을 짓다

다시 한 번, 짧지 않았던 공백을 깨며

누누이 드러냈던 것처럼, 저는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생각이 많음으로 인해 따라오는 몇 가지 특성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메모를 무척 많이 하는 편이라는 겁니다.

(물론 모든 '생각 많은 이'들이 메모를 많이 하는 건 아닐 겁니다. 아마도.)


보통은 책을 읽을 때, 혹은 생각에 푹 잠길 여유가 있을 때 메모할 것도 많이 떠오르곤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좀 달라졌습니다.

일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한밤중에 퍼뜩 잠에서 깨어나 꿈속의 장면을 묘사하듯 적어놓기도 합니다. (보통 일어나서 다시 보면 대체 뭘 적어놓은 건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는 게 예전처럼 단조롭지만은 않아진 탓인지,

아니면 산만하기 짝이 없는 제자리로 돌아온 건지,

요즘 부쩍 더 많은 생각들이 토막토막 찾아와 일상 곳곳을 두드리곤 합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단편적 아이디어들을 최대한 붙잡아두기 위해, 메모 방법도 바꿨습니다. 종이와 손글씨를 고집하던 과거와 달리, 이젠 휴대폰 메모 앱을 메인화면 위젯으로 놓고 자주 쓰고 있습니다.


메모는 단출한 법칙만 따릅니다.

1. 가장 최근 것이 위에 오도록 쓰기.

2.  메모에는 제목 옆에 날짜 적기.

3. 날짜를 적으면서 바로 직전 메모가 언제였는지도 틈틈이 비교해보기.


특히 3번을 중요하게 봅니다.

만약 메모와 메모 사이의 간격이 길어진 것을 발견하면 스스로를 채찍질합니다. 그만큼 생각을 게을리하고 있다는 뜻이거나, 떠오른 생각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냈다는 뜻일 테니 말입니다.



얼마 전, 메모 앱을 열었습니다.

메모장 위젯 아이콘을 터치하는 것조차 흠칫,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니, 또 한동안 생각을 게을리했던 모양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 최근 메모가 6월 29일.

벌써 두 달 넘게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는 뜻.

실제로 브런치에 쓴 가장 최근 글도 7월 1일이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긴 합니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습니다.

잔뜩 쌓인 업무 스트레스는 매번 생각의 흐름을 끊어놓았고, 그럴 때마다 짜증이 나 펜도 잡지 않았습니다.


사실, 바쁜 일상은 나쁜 게 아닙니다.

미치도록 지루하고 무료하게 보내며, 자괴감으로 점점 무기력해져 가던 시절을 생각하면...... 차라리 바쁜 게 낫습니다.


하지만, 입맛이 영 달콤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향하고자 했던 삶은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퇴근하면 꾸벅꾸벅 졸다가 대충 씻고 잠들어버리는 삶을 바란 적 없었습니다.

좀 더 여유롭게 일상을 바라보고, 마음을 한껏 열었을 때 보이는 다양한 단어들을 이리저리 조립해볼 수 있는 삶을 바랐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은 여전히 멀었나 봅니다.

그래서 안타깝고, 아프고, 슬픕니다.


꽤 오랜 시간 발버둥 쳐왔고, 어느새 마냥 꿈이라는 단어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리기엔 버겁고도 불안한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꿈꿨던 삶에는 조금도 다가가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서. 여전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함. 초조함. 안타까움. 자책과 후회.

무기력함을 틔워낼 수 있는 온갖 부정의 단어들 속에서, 겨우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찾아냅니다.


지금 필요한 일.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

두 달의 공백을 깨는 메모 하나. 기록 한 줄. 글 한 편.

자꾸만 멈추려는 생각을 이끌어가며, 손길 가는 대로 끄적여봅니다.

한 사람의 삶에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그리 쉽게 놓아질 리 없다며, 무거운 마음을 비워내려 애써봅니다.


그렇게 또 한 번, 마음을 짓습니다(作心).

어쩌면 또, 흔히들 쓰는 유명한 사자성어처럼 설령 단 3일에 그치고 말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바쁘고, 힘겹고, 피곤한 일상에 치여 머리와 손을 멈추고 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그때는 또 그때의 마음을 새롭게 지으면 되는 거라, 다들 그렇게 반복하는 거라, 그저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한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면 될 테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