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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Jul 01. 2019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너그러움을 다짐할 줄 알게 됐으니, 이제는 묻고 싶습니다

이른 아침.


나는 요즘 출근길에 오르기 전,

거울을 보며 다짐하곤 합니다.

'오늘 하루도 너그럽게 보내자'라고.


.

.

.


오래전 언젠가.

그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잔뜩 두른 가시를 한껏 내보이며, 누구도 다가올 수 없게 했던 시간.

말뿐인 허세와 '척'을 앞세우며 현실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허비했던 시간.

원치 않게 찾아온 상처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잠그고 가둬버렸던 시간.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내 마음의 울타리는 너무 높고, 거칠고, 촘촘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땐 현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 내겐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지, 원망만 하곤 했습니다.


다행히, 한없이 외롭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험한 울타리를 넘어 다가와준 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본 적 없었던 고마움의 표현을 서두르려다 보니, 

매번 실수가 많았습니다.

서툰 표현을 이해해준 사람도 있었지만,

'부담스러운 집착'이라는 오해만을 안긴 채 떠나보낸 이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꽤 많은 관계의 결론을 쌓으며 살았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비록 순탄하지는 않지만,

물든 색깔을 한데 이어놓고 보면 제법 아름다워 보이는 그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

.

.


알록달록하게 수놓아진 시간 위를 걷고 또 달려,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너그러워지자'라는 다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됐습니다.

거울 속 웃는 표정은 여전히 어색하지만,

그래도 너른 마음으로 모든 이를 대하자는 생각을 할 줄 알게 됐습니다.


물론, 모든 이를 포용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내게 호감을 가지는 타인이라 해도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내가 호감을 가진 이가 모두 나를 받아들여주길 바랄 수도 없습니다.

'좋은 감정'으로 이어진 사람들조차 그럴진대,

어찌 '모든 이'에 대한 포용을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한없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삶을 겪을수록 생각은 더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더 어려워지며, 더 두려워집니다.


어쩌면 '너그러워지겠다'라는 매일 아침의 다짐은,

'한 길 속을 알 수 없는' 군상들 속에서 그럭저럭 괜찮게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내린 최선의 처방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

.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오랜만에 내 심장을 한껏 뛰게 만들었던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웃는 표정만을 보여줬던 사람.

그 표정이 너무 좋아서,

사진만으로도 설레게 했던 사람.


웃음을 혼자 착각한 채 막무가내로 '선'을 넘으려던 내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이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멈추기까지,

화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거리를 유지하던 사람.

그리하여 내게, '너그러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사람.


이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아침 너그러움을 다짐할 줄 알게 됐으니,

언젠가 한 번쯤은 물어보고 싶습니다.


충분히 밀어내도 됐을 텐데,

왜 내가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었나요?

왜 그동안 웃어주기만 했나요?



당신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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