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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Nov 05. 2019

'뻔뻔'해지자, 좀 더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었습니다.

내 안의 악의는 꺼낼 필요가 없는, 선의와 호의로 가득한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어렵다는 걸 알지만... 그런 꿈이라도 꾸며, 모나게 살아온 시간을 덮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처럼 살고자 했습니다.

어려운 꿈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되도록 도맡아 하려고 했습니다.

어렵다 싶은 일은 시간을 들여 알아가며 하려 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건, 대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찾아주려 했습니다.


세상살이가 마음처럼 되는 건 아닌지라, 때때로 실망을 안기기도 하고, 트러블을 만들기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사람 관계에 있어서는 나름 노력이란 걸 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급작스럽게 모든 것이 허무해졌습니다.

종이가 불에 사그라들듯, 삽시간에 모든 의미를 잃고 말았다고 하면 적당할 겁니다.


냉정한 눈으로 돌아본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굳이 애를 써가며 일을 맡았던 무모함이,

어려운 것을 어떻게든 해보려 했던 미련함이,

굳이 내가 아니어도 었을 과한 자의식이,

하나같이 모두 나 자신을 좀먹고 있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쏟았던 시간과 노력이, 사실은 나를 '이용해먹기 좋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보여준 호의를 누군가는 권리처럼 누렸고, 내가 꺼내든 선의를 누군가는 기회로 이용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실망과 분노와 후회와 체념이 반복되던 어느 순간, 절망에 가까운 의심을 품게 됐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 좋은 사람 같은 건 없었던 게 아닐까?



의심은 빠르게 커져갔습니다.

내가 봤던 '좋은 사람'들이 그리 보였던 건, 사실 그 순간 뿐이 아니었을까.

그들 사이에 서로 이해관계가 잘 맞았을 뿐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각자의 '선'이 지켜졌기에 그렇게 보였던 아니었을까.


좋은 사람들이 있다한들, 그들은 이미 그들만의 유토피아에서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잘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애당초 닿을 수 없는 곳을 꿈꾸며 홀로 무의미하게 발버둥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의심하면 할수록 생각은 많아지고, 답을 찾지 못한 생각들은 또다른 의심을 낳으며 커져갔습니다.

그렇게 불어나는 의심과 생각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워 몇 번이고 주저앉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더 뻔뻔해지려 합니다.



때로는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조금 더 솔직하게, 조금 더 뻔뻔하게, 내 마음이 가는대로 살아보려 합니다.


더 이상 나를 무의미하게 소모하지 않고, 타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여하지 않으며, 선을 넘었다 싶으면 황급히 물러나 지워진 선을 다시 그리며, 그렇게 한 번 살아보려 합니다.


이런 삶의 태도가 내 앞길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가보기 전에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 어쩌면, 한때나마 꿈꾸었던 '좋은 사람'은 영원히 닿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아쉬워집니다.

어쩌면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선의와 호의로 가득한 낙원에서 살아가기 위해 마땅히 겪어야 했던 '고행'을 이겨내지 못하고 멈춰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조금만 더 견뎌냈다면, 진정 좋은 사람들의 곁에 머물 자격을 얻게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금이 좀 더 낫습니다.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뻔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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