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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Oct 14. 2019

미움, 결코 시들지 않는

지나고 나면, 꽤 오래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기에…… 그렇게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5년 여의 후유증을 겪고, 다시 10년의 시간이 더 지났을 즈음.

조금쯤은 괜찮아진 줄 알았다.

시간이…… 정말 약이라고 믿게 됐다.


더 이상 미워하지 말자.

더 이상 어두운 감정 때문에 나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

그런 뻔하디 뻔한 다짐도 떠올리게 됐다.



하지만 삶에 반전 같은 건, 그리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다시 일상을 부딪치게 된지 며칠 후, 

그동안 크나큰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더 이상의 '자극'이 없었기에,

미움의 불씨가 겉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


눈에 가까워지자 그 날의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귀에 가까워지자 그 날의 말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그렇게, 아팠던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다시 가까워졌다.



열다섯.

한창 예민했었을 마음을 생생하게 할퀴었던 그 순간이,

얼굴에, 음성에, 말투에,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조각조각 흩뿌려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란 믿음은,

더 이상 미워하지 말자는 다짐은,

공허한 꿈 같은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남의 일'로만 들었던 이, 혹은 정말 각고의 노력과 천혜의 행운이 따라 '완전히 극복'해낸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



그 날 이후, 후유증으로 거칠게 메말랐던 마음을 힘겹게 가꿔왔건만,

다시 그 한 켠에 미움의 씨앗을 심어버리고 만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면 무엇이 될지,

그것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 것인지를 안다.


하지만,

아는 것만으로는 어찌 할 도리가 없어,

자라나는 녀석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결코 시들지 않을 것만 같은 미움의 줄기를 바라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열다섯 그 시절, 선혈이 고였던 상처는 아물었을지라도,

여전히 선명한 흉터로 남아버린 그 날의 한 순간.

끝내 떨쳐버릴 수 없을 거라면, 차라리 같이 가져가기로 마음 먹는다.


그로 인해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쳤던, 

꽤 오랫동안 헤매야 했던 나의 시간들을 온 마음으로 애도하면서.

지독한 미움의 고리를 끊어낼 언젠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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