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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Nov 19. 2019

"글, 왜 써요?"

'나는 어떤 목적으로 글을 쓰는가.' 스스로 묻고 답해보았습니다.

텍스트(글)에 관한 한 무엇이 됐든 자신 있습니다.


최근까지 '자소설'을 쓸 때 자신 있게 내세웠던 표현 중 하나입니다.

네, 사실... 반 혹은 그 이상 허세가 섞인 표현입니다.


글이라는 건, '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아닌 경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만.)

말하기의 목적이란 엄청나게 다양하고, 목적에 따라 그 세세한 방법은 조금씩, 혹은 꽤 많이 달라지는 법.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그 목적에 따라 세세한 방법에 상당한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종류의 글쓰기를 모두 다 잘할 수 있다?

어불성설입니다. 적당히 필터링하면 되는 일종의 과장 광고인 셈이죠.


당신은 왜 글을 쓰나요?


사실, 지금까지 대놓고 물어보는 이는 없었습니다.

뭐... 비스무레한 의미를 담아 돌려서 묻는 이는 있었죠.

하지만 딱히 진지하게 묻는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어쩌다 보니 이러고 있네.'라고 답하거나, '생각하고 상상한 것을 끄적이는 게 좋아서.'라고 꽤나 있어 보이게(?) 둘러대곤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으레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일 뿐, 치열하게 답을 고민하고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좋으니 쓰는 거겠지... 라며 적당히 덮어뒀을 뿐.




뭘 써야 하지?


뭔가 쓰고 싶어 근질거리는 기분에 사로잡힌 어느 날이었습니다.

머리맡에 굴러다니던 노트를 펴고 즐겨 쓰는 펜을 꺼냈지만, 한참을 끄적끄적 잉크만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단어 하나 썼다가 지우고, 또 하나 썼다가 지우고.

겨우겨우 한 문장 정도 썼다가, 아니다 싶어 또 북북 그어버리고.


그렇게 잉크의 무의미한 희생만 늘려가던 중,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뭘 쓰고 싶은지 알려면, 뭘 써야 할지를 정하려면 우선 '쓰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쓰는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매번 뒷전으로 미뤘던 질문이 다시 찾아온 순간.

이번에는 대충 뭉뚱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꼭 뭐 하나라도 쓰고 싶은 날이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써왔던 글의 상당 부분은 '타인의 목적'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소위 '업계 관계자'들이 원하는 대로. 주 독자층이 좋아하는 대로.

대부분 누군가를 의식하며 쓴 것들이 많았고, 정작 내 쓰고 싶은 대로 썼던 것은... 글쟁이를 자처하며 보낸 시간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습니다.


그래서였나 봅니다.

꽤 오랫동안, 꽤 많은 글을 써 왔음에도 뭘 쓰고 싶은지 매번 고민하게 됐던 이유.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단 한 번도 명확하게 답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목적


이번에야말로 답을 내려보자 싶어,

군더더기는 다 치워두고 하나의 단어에 집중해봅니다.


정보를 전달하거나 설명하는 글? 그런 정보를 갖고 있을 만큼 트렌드에 민감하지도, 그걸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논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의견을 제시하고 주장하는 글? 목소리를 내는 건 좋아하지만, 너무 강하게 내세우는 건 왠지 내키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는 건데, 본인이 원한다면 모를까 굳이 불청객스러운 훈수를 두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지식을 가르쳐 줄만한 글? 어떤 분야에서 누굴 가르칠 만큼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분야가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투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어쩌다 누군가의 반발을 사는 글을 쓸 때면, '제가 생각이 짧았다'라고 인정하고 물러나버리곤 합니다.

혈기 넘치던 시절과 달리 요즘은 성질머리 죽이는 데 꽤나 익숙해져서, 분쟁을 일으킬만한 '어그로' 성향의 글은 쓰는 일이 거의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지워가다 보니, 비로소 원하던 답이 드러납니다.

내 속도로 걸으면서, 내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서, 내 느낌대로 쓰고 싶은 것들.


때로는 시류와 전혀 맞지 않는 생뚱맞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존의 관념을 거슬러 '광역 어그로'를 끄는 생각은 굳이 꺼내놓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때때로 뜬구름 잡는 듯한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스트레스로 가득한 이 엿같은 세상에서,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자기 입맛대로 이해할 수도, 쓸만하다 싶은 문장 몇 토막 정도만 주워 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조차도 뭘 말하고 싶은지 헷갈릴 때가 많은 세상입니다.

더럽게 복잡한 나머지 '잘 살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면 골부터 지끈거리는 세상이죠.

그런 짜증 나고 울적해지기 쉬운 세상인데, '기획'되지 않은, 바람이나 물결처럼 유연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인간 하나 살아갈 틈바구니쯤이야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과연 글 쓰는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
남은 생을 펜을 잡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목적이 분명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꽤 여러 번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답은 늘 똑같았습니다.

이젠 어쨌거나 목적 하나라도 정했으니,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앞날에도 답은 항상 똑같을 겁니다.


무엇을 써야 하나. 얼마나 자주 써야 하나. 그런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진정 자유로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오직 나를 위해, 나만을 생각하며 썼던 글.

지금까지 글들을 읽어준 고마운 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제 글에서 뭔가를 얻어가거나 배우려 할 필요는 없다고.

제 글에 동의하거나 지지해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바라건대 그저, 우연히 이 글을 만난 어느 날 그 어느 순간.

당신의 눈에 들어온 그대로, 당신의 머리가 이해한 그대로.

읽고 느껴주면 그걸로 적당하고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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