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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Jun 28. 2020

생각의 방향

'더 나은' 방향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가질 것

토요일 오전 8시.

아침형 인간과는 거리가 먼 내겐 퍽 이른 시간.

태익태(怠益怠)의 몸뚱이를 이끌고 차에 시동을 건다.


고속도로를 타고 약 2시간 30분가량.

엄청나게 먼 거리라고는 할 수 없겠다.

하지만 홀로 가기에는 그리 만만치 않은 거리다.

나처럼 게으른 몸을 가진 타입에게는 더더욱.


시간에 쫓기는 게 싫어 부지런히 액셀을 밟았다.

주말 낮이라 약간의 정체는 있었지만, 일찌감치 출발한 덕분에 11시가 조금 못 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1년에 두 번 갖는 모임에서 대장 취급(?)을 받는 형의 집.

한 시간 정도 휴식과 근황 토크 후, 12시 즈음 약속 장소로 향했다.

매달 조금씩 회비를 걷고, 1년에 두 번 만나 탕진(?)하는 모임. 덕분에 1년에 두 번, 제법 신경 쓴 메뉴를 맛볼 수 있다.

(2시간 반이 아니라 훨씬 더 걸려도 와야 하는 이유)


간만의 호화로운 식사를 마친 다음, 소화도 시킬 겸 2차로 맥주 두어 잔(낮술)을 걸치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다.

대학 시절에 만나, 이제는 다들 30대 중반이 된 남정네들의 대화 주제는... 뭐, 어차피 예측 가능한 범위일 테니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혹시 오해할까 싶어 굳이 TMI를 제공하자면, 대체로 커리어나 재테크 쪽. 진짜임. 리얼임.)


대여섯 시간 정도의 모임을 마치고 쿨하게 Bye.

모두를 보내고 나서 다시 형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겸 안주로 찜닭 하나를 시켜놓고 단둘의 3차 시작.

이런저런 사업을 꾸려가고 있는 형과,

소소하게 월급쟁이로 살고 있는 나.

주제는 다르지만 둘 다 꿈이 있고 그 꿈을 중요시하는 타입이라, 이야기가 잘 통하는 편이다. 물론 월급쟁이의 신세한탄이 빠지지는 않지만.



최근의 나는, 좀 대책 없이 놀았다.

시간을 이렇게 허비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누구나 그렇듯, 걱정은 했다.

그래도, 자격증 취득을 위해 수업도 듣고 학점도 땄다.

올해 안으로 모든 과정을 마칠 예정이다.

그밖에 글쓰기를 꾸준히 하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하며 이유를 고민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마련하기 위해 나름의 계획세우고 있다.

노는 와중에 자그마한 면죄부가 될 수 있는 성과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노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말 압도적으로.


특히 가장 많았던 건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는 시간.

타인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분명 좋은 공부가 될 수 있지만, 양심적으로 최근 내 패턴은 휴식이자 킬링타임에 훨씬 더 가까웠다.

콘텐츠 업계 발전에 티끌만큼이나마 도움이 됐을지는 몰라도, 내 미래나 인생 발전에는 별 도움이 안 됐다는 뜻.


위기감이 들었다.

보다 생산적으로 시간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렴풋한 술기운에 선언했다.

웹툰/웹소설 보는 시간을 줄이겠다고.

그러자 이어진 형의 조언.


뭘 줄이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
뭘 늘리겠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좋아.


뼈를 때리는 듯한 말이었다.

사실 간단한 이야기다.

기존에 하지 않던 것을 시작하거나 덜 하던 것을 더 하게 되면, 자연스레 다른 것을 덜 하게 되거나 못 하게 된다. 시간과 체력은 한정돼 있으니 결과는 같다.


하지만 다르다.

줄어들고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느냐.

늘어나고 생겨나는 것을 바라보느냐.

같은 결과를 놓고 바라보는 '생각의 방향' 차이.

어느 쪽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은 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정이 채 되지 않은 시각.

이른 기상과 운전으로 인해 몰려오는 피곤함 속에서도 꽤 오랫동안 곱씹었다.


짧았던 말과 긴 여운.

그 하나만으로도 가득 채워진 기분이 드는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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