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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0. 2023
짧은 하루, 작은 틈
무엇으로든 채우던 그곳에, 무엇을 채워갈지를 고민하며 쓰다
지나기 전의 하루는 참 길다.
지나간 후의 하루는 참 짧다.
아침이면 '오늘 하루 또 어떻게 보내나' 하는 생각에 까마득하지만,
저녁이 돼 일기장을 펴고 앉으면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더라' 하며 가물가물해한다.
그래, 시간은 빠르고 하루는 짧다.
그러니 짧은 하루들이 모인 나날들도,
알고 보면 그리 길지 않다.
그러니 어쩌면 남은 시간도......
어차피 길지 않은 시간,
무엇 하나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여겼다.
비어있던 종이 한 장을 채우는 것.
기억하고픈 감정 하나를 마음에 담는 것.
몰랐던 것 하나를 새로이 알게 되는 것.
잊고 있던 것 하나를 다시금 되새기는 것.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괜찮았다.
짧은 하루는 '해야 할 일'들로 채워져 있다.
가뜩이나 짧은데 이미 무언가로 가득하다.
그 비좁은 가운데를 비집고들어 작은 틈을 만들어봐야, 할 수 있는 게 무에 있겠나 싶어 그냥 흘려보내곤 했다.
하지만, 그 작은 틈에 무언가가 채워져 왔기에 오늘이 있지 않았을까.
수없이
흘려보내던 틈 사이사이에 뭐라도 비집어 넣으며 살아왔기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작고 짧은 것들이 모여 크고 긴 것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 어떤 웅장함이든, 쪼개보면 결국 작고 짧은 것들이지 않을까.
별 거 아닌 듯한 내 일상도, 멀리서 보면 제법 괜찮은 그림은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더 채우면 더 볼만해지지 않을까.
무엇으로든
채워감으로 희망을 키워왔지만,
과거의 어느 날들과 지금의 다른 점이 있다.
그때는 작은 틈에 별 고민 없이 채우고 싶은 것을 채워왔지만, 지금은 틈 하나를 앞에 두고 망설인다는 것.
무엇을 채울지, 그래도 되는 건지,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는 것.
세상을 좀 더 알게 된 만큼 신중해져서, 겁이 많아져서 그런 걸까.
글쎄... 어쩌면... 하나를 채운다는 의미는, 남은 것들 중 하나를 잃게 된다는 의미임을... 알아버린 후여서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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