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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Oct 10. 2023

착각을 놓다, 적성을 찾다

'잘 쓰는 것'보다 '많이 쓰는 것'이 먼저다

한때는 글쓰기만큼 쉬운 게 없었다.

그래, 분명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머리에 닿은 생각들이 떠나기 전에,

서둘러 글로 풀어내고 싶어 안달이었던,

그래서 사람 만날 시간조차 아까워했던,

자발적 사회부적응(?)의 시간이었다.


글감은 머릿속에 쉴새없이 떠올랐다.

언제든 잡아채기만 하면 됐을 정도.

하나를 잡아 글을 쓰는 사이에

스쳐가는 것들이 아까울 정도로 많았다.

건져올린 글감을 펼쳐놓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을 붙이다 보면,

오래지 않아 쓸만한 문장이 나오곤 했다.

거칠게 지어진 문장을 조금씩 매만지다보면,

별 어려움 없이 글 한편이 뚝딱 나오곤 했다.

이제서야 깨닫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는,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느냐는 찬사.

아마 '소셜 스킬'(=빈말)많았겠지만...

그땐 곧이곧대로 듣던 시절이라

겸손의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속으로는 우쭐했던 적도 많았다.


이런 느낌... (아, 내가 생각해도 재수없다...)

그런 과거들이 남겨준 것은...

원망과 자괴감이었다.

화려했던(?) 옛 시간이 발목을 잡아,

'평범해진'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예전엔 잘 했잖아.
어려워 한 적 없었잖아.
왜 이렇게 돼 버린 거야.


자책하고 자문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글을 쓰려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

매번 무언가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자유롭게 유영하던 글감들은 뜸해졌고,

어쩌다 잡아채는데 성공하더라도

몇 마디 이어지다 흐름이 막혀버렸다.


극도의 허무함.

나 자신을 부정당한 듯한 우울감.

그럴 때마다 하소연하듯 끄적여놓곤 했다.

(브런치에만 해도 꽤 많다.)

미처 글로 지 못한 채 흩어진 독백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렇게 몇 년 넘게 고생한 끝에,

오랜 자괴감에 시달린 끝에,

비로소 출구에 도달했다.

그 시절 글쓰기가 그토록 쉬웠던 건,

 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스스로의 세계 안에서만 살았기에,

백지 위를 달리는 펜에 거리낄 것 없었다는 걸.

나 자신의 '오만'.

 지극히 당연한 결론까지 오는데,

대체 몇 년이 걸린 걸까.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은 어렵다 하는데 나에겐 쉽기에,

하늘이 내려준 무언가가

나에게 있는 게 아닐까 착각했었다.

(이렇게 쓰니 좀 중2병 같기도...)


그래, 솔직해지자.

지금도 착각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는 못했다.

예전만큼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조금은 재능이란 게 있지 않을까?'라고.

련을 버리지 못하고 우쭐해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제는 재능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님을 안다.

설령 나에게 조그마한 재능이 있다한들,

매번 쓰는 글마다 '대박'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기꺼이 '천재'라 부를 수 있는

지나간 시대의 재인才人들도 해내지 못한 것을,

한 토막 재능을 갖고 꿈꿀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무던히 쓰고 또 쓰고 다시 쓸 수 있는,

그러고도 지치지 않고 다음 장을 넘길 수 있는,

그런 열정을, 적성을 얻은 걸로도 족하다.


과한 욕심을 접어두고 즐기다 보면,

그렇게 쓰고 또 써내려가다 보면,

언젠가 그토록 쓰고 싶었던

좋은 글, 멋진 글을 여럿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많은 이들로부터

빈말이 아닌 진심 어린 찬사를 받게 된다면,

만약 정말 꿈에 그리던 그런 날이 온다면...

아마 오늘과는 정반대의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그 재능이라는 녀석이,

오래 전부터 나에게 있었다는 걸,

늦었지만 이제서야 깨달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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