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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Sep 28. 2023

삶,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믿음'을 구하기 위해, 각자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이전 글의 막바지에, 의문을 남기고 말았다.

나는 과연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그간 적어온 들은 과연 얼마나 믿을만한가?


참, 심오한 이야기다.

자칫 뜬구름 잡는 듯 흩어지기 쉬운.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추상적인 질문이다.

한편으로는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쉽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믿음이란 일상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나 혼자 다 할 수 없는 것을 누군가 대신해 준다는 믿음.

값을 치르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도움을 주면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이를테면 이런 것들도 '믿음'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


다소 고리타분할 수 있지만,

지극히 원론적인 지점부터 시작해 보았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라는 건,

굳이 증명이 없어도 많은 이가 동의하는 명제다.


뭐... 개인의 가치관이란 천차만별이니,

'남이 날 믿든 말든 상관없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

피치 못할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다거나,

세상의 통념과 맞서는 투쟁열사라면,

'나를 믿지 말라'라고 스스로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일상적인 영역까지 확대한다면,

믿음이 전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글쎄... 첩첩산중에 홀로 산다면 가능은 할 것이다.

어떤 소설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음식의 하위에, 분변의 상위에 있는' 

자연 그대로의 삶일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특별한 의미를 찾기 힘들지라도,

그 또한 개인의 자유이니 상관은 없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야...)


즉, 위와 같은 어떤 예외에 속하지 않는 한,

인간은 살기 위해 타인의 믿음을 필요로 한다.

내가 만든 물건, 내가 쌓은 지식을 '팔기 위해'.

그로 말미암아 나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 위해.

하다 못해 남을 속이려는 목적을 가진 인간조차도,

'나를 믿어달라'라고 강변하는 게 현실이지 않던가.



믿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역시 심오하고 어려운 질문.

여기에 부족함 많은 답안이나마 적어내기 위해,

먼저 믿음에도 '종류'가 있음을 전제하기로 한다.

하나는 객관적 증명에 기반한 '사실적 믿음'이요,

 하나는 자연스레 생겨나는 '심리적 믿음'이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용어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심리적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성, 정, 신뢰와 같은,

세상을 살만하게 만들어주는 믿음이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믿음을 주는 과정과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에 대한 왕도(王道)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즉, 심리적 믿음을 얻는  개인의 몫이다.


그에 비해 사실적 믿음은 비교적 뚜렷하다.

세상 대부분의 관계에 넓고 얕게 걸쳐 있는 이 종류는,

현대인들이 추구해야 할 '도구'에 가깝다.

사실적 믿음을 얻기 위한 방법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규칙'존재한다.



인터넷이라 불리는 '연결의 축복' 아래,

우리는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며 살아간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말과 글을 듣고,

부지불식간에 그것들을 '믿으며' 살아간다.



무엇을 보고 믿는가?

입에서 귀로, 에서 입으로 퍼지는 수많은 말과 글.

그중 믿음을 얻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소위 말하는 '팩트'.

또는 팩트라 봐도 무방한 '권위자'의 인증.

그중에서도 특히 후자의 비중이 크다.

왜일까?


대부분의 팩트란, 정보의 바다를 찾고 찾다 보면 어딘가에 그 뿌리가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그걸 찾고 검증하고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시간적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지난(至難)한 과정을 대신한 누군가를 믿는다.

그가 투자한 많은 시간을,

반복해 온 경험과 숙련도를 믿는 셈이다.

(이것이 '권위'의 본질이라는 게 내 결론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학교의 졸업장.

전문가 집단의 인정을 통해 주어지는 학위.

유수의 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증명이나,

널리 알려진 분야/단체 등에서의 이력.

사실적 믿음을 얻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것들이다.

'모르는 사이'의 믿음을 보증증명서랄까.


하나 이는 아무나 얻을 수 없다.

특정 시간을 들이면 답이 나오는 공식도 아니며,

한 번 놓치면 다시는 기회조차 오지 않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희소성이 있는 것이기에...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 '믿음을 얻는 방법'에 대한 힌트가 있다.

어떤 일을 꾸준히 해왔다는 흔적.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다는 명확한 근거.

그것이 곧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증명이 된다.



앞서 말한 '희소함'은 상대적 소수만이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희소함을 갖지 못한 대다수에게도 길은 있다.

객관적인 가치 면에서는 부족함이 있을지 몰라도,

삶을 의미 있게 꾸려가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기회가.


꾸준함을 증명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엇에 대해서든, 언제가 됐든 시작할 수 있다.

물론 마냥 쉽지만은 않겠지만,

'희소함'을 얻기 위한 것에 비하면 낫지 않을까.

(안 해봤으니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예전에 놓쳐버린, 되돌아오지 않는 기회를

허망하게 바라보며 후회하는 삶보다는 분명 낫다.


나 또한 그 길을 가야 하는 다수에 속하기에,

함께 나아갈 길동무가 하나라도 더 많기를 바란다.

더불어 살아야 할 세상이라면,

사실적 믿음이든 심리적 믿음이든,

하나라도 더 많은 게 좋지 않느냐는 '믿음'으로...

긴 글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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