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이후, '사랑 받을 자격'에 상처를 입은 듯 합니다
허어, 경치 참~ 좋다. 좀 멀긴 하지만 울산바위도 보이고. 어둠이 한가득 깔린지가 한창인데 이제서야 이 광경을 둘러보는구나. 그나저나 에잉...... 널따란 평야 곳곳에 구획선이라니. 자연 느낌 안 나게시리. 게다가 텐트? 뭐야, 얘네 무슨 군인이야? 아닌데...... 군인이라고 보기엔 다들 너무 어린데?
텐트만 해도 수백, 아니 수천 동은 족히 되어보이는데 대체 정체가 뭐냐 이거. 여기가 무슨 소년병 징집해서 쓰는 나라도 아니고. 얼씨구? 게다가 까만머리, 노란머리도 섞여 있네. 거, 보면 볼수록 신기한 광경이로세. 세계 스카우트 연맹......? 아, 그런 거였구만.
거 대충 둘러봤으니 이제 그만 가볼...... 어라? 흥미로운 광경이 하나 보이네. 그리 멀지는 않으니 좀 더 구경해볼까. 읏챠, 일단 좀 앉아서 상황을 좀 봅시다. 어디 보자, 저 텐트동인데...... 무슨, 지역대? 뭐 그렇게 써있는 거 같은데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그 앞에 여학생들이 왜 이리 많아? 저 남학생한테 할 말이 있어서 온 건가? 아니, 아니군.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누군가를 불러달라고 한 모양이야.
허 참, 꼬맹이네. 아까 그 남학생이 훨씬 낫구먼. 키도 훤칠하고, 얼굴은...... 안 보이지만 뭐 괜찮게 생겼을 것 같은데 말야. 사람 보는 눈이야 제각각이니 내가 뭐라고 할 건 아니다만. 보자보자, 저 여자애는 뒤에 혼자 남아있네? 그리고...... 방금 나온 남자 꼬맹이는 딱 보니 자다가 불려나왔군. 야, 거 눈 비벼서 뭐하냐. 어차피 안 보이는데. 그냥 불을 켜. 나도 좀 보게. 아, 짜식. 말 되게 안 듣네.
흠......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저 뒤에 서 있는 여학생이 저 쬐그만 놈이 마음에 들어서 이 밤 중에 편지를 써서 가져왔다는 건가? 잘 보이지는 않는데 얼추 분위기 보니 맞는 거 같구만. 허허허허, 청춘이로세. 좋~을 때야. 가만히 자고 있는데 연애편지도 받고, 너 이놈 다시 봤다?
어라? 근데 뭐야. 쟤 지금 편지를 그냥 내던진 거야? 아니지, 돌려주려다가 놓친 건가? 가만 있어보자. 연애편지를 받았는데 돌려줘? 그것도 웃긴데. 그럼 대체 뭐야? 설마 거절한 거냐? 저 배부른 놈의 자식이. 허허~
뭐야, 저 놈. 소리도 질러? 아니, 저 좋다고 오밤중에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감사합니다 넙죽 받지는 못할 망정. 그래그래, 여자애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지. 사람 보는 눈은 다 제각각이니까 말이야. 근데 그건 아니잖냐. 거절할 때 거절하더라도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다독여줘야지. 남자 여자를 떠나서 최소한 그게 인간된 도리 아니여?
이놈 새끼 너...... 내가 오늘 꼭 기억해둔다. 굴러들어온 인연을 네 발로 걷어차는 거야 내 소관이 아니다만...... 인간이 되서 그러면 못 쓰지. 아직 어려서 철이 덜 들었다고 쳐도, 아닌 건 아닌 게야. 너 이놈, 당분간 고생 좀 해봐라. '사랑 받을 자격'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절실히 깨닫게 해줄 테니까.
에이 참, 재미있어 보여서 구경했다가 못볼 꼴만 봤네.
세상이 어찌 되려고...... 말세야, 말세. 잠이나 자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