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잡는 #5. '적당히' 사색하는 밤

김치 - 운동 - 중용론, '뜬금포'로 이어지는 '적당함'에 관한 고찰

by 이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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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김치를 담그는 어머니 옆에 앉아있는 걸 좋아했었다. 물론, 그다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쳐다보고 앉아있을 뿐. 참을성이 바닥나면 주위를 서성거리며 딴청을 부리기도 했지만, 결코 멀리 나가진 않았다. 근처에서 알짱대고 있을라치면, 어머니께서 갓 양념을 묻힌 배추 이파리를 한 조각씩 입에 넣어주시곤 했기 때문이다. 달착지근하면서도 매콤짭짤한, 그 이파리가 유별나게 맛있었다. 제보다 젯밥이었던 셈이다.


옆에 앉아 김치가 버무려지는 걸 구경하고 있다보면 어머니께서는 으레 자잘한 미션(?)을 부여하시곤 했다. 소금이나 고춧가루, 액젓 같은 것들을 부엌에서 가져오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적당히 부어보라'는 임무였다. 마치 내가 김치의 맛을 책임져야만 할 것 같은 난감함과 중압감이란......


낢-김장.JPG 그래, 딱 이 느낌이다. (네이버 웹툰 <낢이 사는 이야기> 中)


뭐, 사실 그 당시에야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더-더-더-"라는 신호에 계속 들이붓다가 "스톱"했을 때 멈추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물론 멍 때리고 부어 넣다가 불김치나 액젓김치를 만들어 놓은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래놓고는 다 부은 뒤에 물어봤겠지. "엄마, 적당히 넣은 거 맞아?"


대학 시절, 처음으로 자취라는 걸 시작하면서 간단한 요리들을 익히기 시작했다. 초보 자취생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계량화'였다. 라면에 넣을 물을 몇 cc까지 재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어떤 컵으로 몇 잔'과 같은 일정한 기준은 있어야 했다. 그때는 그래야만 내 한 끼 식사의 평화와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니까.


대체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는데 신기하게도 언제나 같은 맛을 만들어내던 말, '적당히'. 내 손으로 직접 재료의 양을 측정하고 요리를 해보면서, '적당히'라는 말에 담긴 마술 같은 매력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서른 해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수없이 들어왔고 앞으로도 더 많이 들을 말이건만, 여전히 감을 잡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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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가을 무렵, 헬스라는 걸 처음 시작했다. '어좁'이에 고도 비만이었던 저주받은 체형을 바꿔보겠다고 하루라도 빠질새라 드나들었었다. 울끈불끈 王자 복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건 지금까지도 가져본 적 없다) 역삼각형 몸매 정도는 갖고 싶다고, 트레이너를 무던히도 귀찮게 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도 PT(Personal Training)이라는 개념은 있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으니 방법이라곤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 뿐이었겠지......


그게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최근 불어나는 뱃살을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 다시 피트니스 센터를 찾았다. 이틀에 걸쳐 몇 군데 시설을 나름대로 둘러본 뒤 한 곳을 골랐다. 인테리어가 괜찮아 보였다. 기구들도 새 것처럼 깔끔했고. 무엇보다 다른 곳에 비해 적당히 여유로운 공간이 마음에 쏙 들었다.


bodymindspirit.jpg 피트니스 = 몸과 마음과 정신의 황금비율. 뭔가 시험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며칠 운동을 다니다보니 실내에 붙은 문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런닝머신 앞에는 식스팩 복근 사진과 S라인 비키니 사진이 붙어있고, 그 위는 "Stop Wishing, Start Doing!"이라고 적혀있다. 덤벨과 케틀벨이 있는 프리 웨이트 존(Free Weight Zone)에는 "You are so much stronger than you think."라고 적혀있다. 흔하고 식상한 말이지만, 그걸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좀 더 힘이 나는 건 사실이다.


BMI(Body Mass Index, 신체질량지수) 측정을 해봤다. 한동안 운동을 잊고 살았던지라 특별히 뭘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결과를 받아드니 심란했다. 표정에서부터 묻어나오는 막막함, 그리고 한숨. 트레이너라면 일과처럼 마주할 상황, 아마도. 역시 그는 선의의 가식을 듬뿍 담아 격려의 멘트를 던져준다. "먹고 싶은 거 다 참는 건 너무 비현실적이고, 그냥 적당히 드시면 돼요." "적당한 운동 프로그램 짜서 꾸준히 하시고요." ......젠장. 그 '적당히'를 좀 설명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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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난 여태까지 헛짓거리를 했던 걸까? '적당히'라는 말에 정답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고춧가루 몇 움큼, 액젓 몇 숟갈 더 들어가면 맛은 좀 달라질지언정, 김치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지는 않는다. 오늘 치킨 한 조각 더 먹으면 좀 더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지만, 영원히 몸이 망가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주위엔 '정해진 답'을 찾으며 살아가는 치열한 인생들이 있다. 당신도, 나도 어떤 면에서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떤 것들은 적당히 해도 된다. 아니, 오히려 적당히 해야 더 좋은 것들도 많다. 팍팍하게 느껴지는 삶에 한 줄기 여유를 비춰주는 말. '적당함'이야말로 우리가 평생을 들여 생각해보며 익혀야할 덕목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생각도 '적당히' 해야겠지만.


흑과 백. N극과 S극. 네 편 아니면 내 편...... 너무 철저하게 나눠진 듯 느껴지는 요즘이다. 정도(程度, Limit)를 모르고 극단으로 치닫는 소식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채운다. 틈틈이 '적당함'을 생각하다보면, 그럴 때 가끔 당신도 모르게 읊조리게 될지도 모른다. "좀 적당히 하지......" 그렇게 한 발짝씩 자신만의 기준선을 그어가는 거다.


세상에는 수많은 색깔이 있고, 저마다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고들 한다. 뭐, 맞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너무 극단적인 것조차 개성이라고 주장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삶의 다양성을 엇박자로 이해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도 '적당히' 할 줄 아는 지혜는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이 애매모호한 단어로 말미암아 적당히 상식적인 세상이 왔으면 참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이 글은 성지가 되려나......)


2014121401403_0.jpg 한때 '극단적인 서비스 정신' 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것. 더이상 이름을 거론하기는 좀 마음에 걸려서 그냥 '적당히' 먹을 거 사진으로 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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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저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 그가 주창하던 윤리학의 중심은 중용론(中庸論)이다. 지나침과 부족함,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을 유지하는 것을 바람직하다 보는 사상이다. 그 양반 거, 말씀 한 번 참 잘하셨다.


나는 이 '중용'이라는 말을 거의 병적으로 신봉한다. 그래서 매순간 기억하고 실천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도 한다. 본능대로 뭔가를 하다가도 아차 싶어 이성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내 개인의 감정을 쏟아내다가도 불현듯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가끔은 예전에 품어왔던 생각들을 송두리째 갈아엎을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이랬다 저랬다 하는 변덕쟁이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얘기를 들어보기도 했고. 하지만 내게는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잡아가는 중요한 단서다. 살다보면 종종 깜빡하기 일쑤여서 요즘은 한층 주의하는 중이다.


어느새 나는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중용론을 '적당히'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萬壽山)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하여가(何如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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