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 고전게임 관련 포스트를 둘러보다가 <대항해시대4> 이야기를 발견했다. 갑자기 '필'이 확 꽂혀, 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한 일주일 정도는 정신 없이 시간을 보냈던 듯하다.
꽤 오래된 게임인 만큼 다소 낡은 느낌의 그래픽. 하지만 게임 전체에 녹아있는 감정선은 여전히 건재했다.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꼬박꼬박 플레이한 사람들은 대개 2편이나 3편을 최고로 꼽곤 한다지만, 나는 애초부터 4편으로 시리즈를 처음 접한 탓에 이쪽에 좀 더 애착이 간다.
오리지널부터 파워업키트까지, 플레이어블 캐릭터 7명 모두의 엔딩은 당연히 몇 차례씩 봤다. 고작 몇만 냥 수준의 초기 자본금에서, 수천만 냥의 '돈 깡패질'이 가능한 수준까지 키우는 일은 기계적으로 하는 정도랄까. 이번 플레이에서는 중반 이후부터 메인함대 짐 창고를 몽땅 없애고 여기저기 싸움을 걸거나 아이템을 찾으러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부하들 함대가 잔뜩 벌어오면 난 그저 펑펑 쓰기만 하는 행복한(?) 라이프......
이젠 얼굴만 봐도 엔딩이 보여......
처음 이 게임을 접했던 때, 공략집 들여다 보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공략집 보고 그대로 따라가고, 또 공략집 보고 그대로 따라가고...... 참 뭐랄까, 게임을 한다기보단 지도 보며 길 찾아가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오랜만에 <대항해시대4>를 다시 찾으며 나름대로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공략집 없이 엔딩까지 가보자는 것.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목표는 '반쪽짜리 성공'을 거뒀다. 공략집 없이 엔딩을 볼 수는 있었지만, 아이템 수집을 거의 하지 못해 영 개운치 않았다. 원래 패키지 게임 하나를 붙잡으면 씹고 뜯고 매운탕까지 끓여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지라, 이런 식의 플레이로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자, '공략집 없이' 다 찾으실 수 있겠습니까......?
게임에 있어 공략집이란 어떤 존재여야 할까? 좀 더 수월하게 플레이하고 싶을 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도구'. 내가 생각했을 때 공략집은 딱 그 포지션이 돼야 한다.
기본적인 조작 인터페이스나 진행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가이드는 분명 필요하다. 그것은 낯선 게임으로 유저를 초청하기 위한 일종의 첫인사 같은 거니까. 하지만 게임 전체의 스토리와 진행을 다룬 공략이라면 적어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는 <대항해시대4>만의 문제는 아니다. 흔히 '고전'으로 분류되는 게임들을 살펴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 하긴...... 생각해보면 그 시절에는 별다른 단서 없이 무작정 삽질하고 다니는 플레이조차 나름대로의 낭만과 재미가 있었다. 다만,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비효율적인 노가다이자 엄청난 고역일 뿐이기에, 변화가 필요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공략집을 보며 효율적으로 플레이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풀어가며 즐기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스스로 즐기는 길을 선택했을 때, 게임 내에서 주어지는 단서만 가지고도 모든 콘텐츠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여행과 스스로 찾아다니는 여행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이드 여행이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라면, 직접 준비하는 여행은 자신만의 특별한 기억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니까.
게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에는 누군가의 심혈이 들어간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콘텐츠다. 유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재미 있는 기억을 남겨주는 것.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소망하는 바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공략집은 '옵션'으로 남겨둘 수 있는 게임 디자인이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