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디 뻔한 시스템 분석, 플레이 소감 같은 걸 적고 싶진 않았다. 매 시리즈의 플레이 소감만을 논하고 끝내기에 이 프랜차이즈는 이미 너무 거대해져 버렸다. 게다가 게임 하나를 사면 느긋하게 할 거 다 해가며 즐기는 타입이라, 이번 신작 하나만을 리뷰하려면 앞으로 한 달은 더 있어야 가능할 게다.
이유 하나를 더 갖다붙이자면, 게임에 내 개인적인 관점과도 관련이 있다. 그 순간 재미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도 생각할 거리를 남겨줘야만 충분한 가치가 있는 법. '취향 게임'을 분류하는 내 지론이다.
왜 나는 많고 많은 게임 프랜차이즈 중에서 유독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만 매달렸는가. 그에 대한 답을 꽤 오래 고민해왔고 한 번쯤 글로 옮기고 싶었다. 하지만 게임 기자 시절엔 기회가 없었다. 내 생각에도 이건 '진성 게이머'들의 입맛을 돋울 이야깃거리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 참에 그냥 이 곳에 쓴다. 다소 짧은 호흡으로 계획하다보니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된 단초 정도는 보여줄 수 있으리라.
난해한 질문을 하나 던지고자 한다. 자유와 질서.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키워드에 관한 생각을 묻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인가? 아니면 적당히 섞일 수 있는 것인가? 아마 여기에 대한 대답이, 당신의 '사상(思想)'이고 '이념(理念)'일 것이다.
여기, 고대로부터 꾸준히 대립해 온 두 집단이 있다. 암살단(Assassins), 그리고 템플기사단(Templars). 한 쪽은 '인간이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갈 권리와 능력이 있다'고 역설한다. 다른 한 쪽은 '적당한 질서와 규율, 그것을 이끌어갈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쪽은 모두의 삶에 동등한 가치가 있음을 설파하고, 다른 한 쪽은 때에 따라 일부의 희생은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방법의 차이다. 다만 그 '방법'이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이기에, 대립하고 갈등하며 폭력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서로를 겨눈다. 시리즈 특성상 '암살단 = 선(善), 템플기사단 = 악(惡)'으로 규정되는 듯 보일 수도 있다.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를 개발하고 있는 유비소프트(Ubisoft)의 관계자가 이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어쌔신과 템플러는 선과 악이 아니다. 단지 관점의 차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시리즈 전체를 보면 어쌔신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본 사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템플러의 관점 역시 '틀렸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인류의 번영. 암살단과 템플기사단 모두가 지향하는 '본질'이다. 다만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변절한 이들이 오류를 만들어냈을 따름이고, 이 시리즈는 그 개별 사례들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고 있다.
<어쌔신 크리드 3>에 등장하는 '헤이덤 켄웨이'는 본래 암살단 소속이었지만 템플기사단으로 전향한 인물이다. 헤이덤은 암살단과 대립하면서도 어떤 측면에서는 뜻이 통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중 그의 대사로부터 추측하자면, 본래 템플기사단은 '질서를 만들고 수호하기 위한 조직'. 타인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일은 일부 변절한 단원들의 소행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어쌔신 크리드 로그>의 주인공인 '셰이 패트릭 코멕'은 이와 반대로 '암살단의 오류'에 초점을 맞춘 인물이다. 암살단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죽는 장면을 목격하자, 셰이는 템플기사단으로 돌아서 이들의 오류를 바로잡으려 한다.
즉, 어느 한 쪽이 '절대선'이라거나 '절대악'일 수는 없다. 언젠가 적었던 다른 포스트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인간이란 본래 불완전한 존재다. 집단이든 신념이든, 인간이 모여 만든 것.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함께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목표는 같았으나 방법을 달리했던 아버지 헤이덤과 아들 코너.
자, 이제 질문을 조금 바꿔 다시 묻는다. 자유와 질서, 어느 쪽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조금 전 질문보다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으리라 믿는다. 애시당초 정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니까. 이념이니 사상이니 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는 제쳐두고서라도, 인간의 삶이란 본래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다른 의견을 빚어내고 부딪치며 살아가는 본성만이 변치 않을 뿐.
역사가 '역사'라는 이름을 달고 기록되기 전부터, 이미 인류는 계층과 집단의 갈등을 겪어왔다. '이념'은 그 정점에 서있는 가장 민감하고 강렬한 투쟁. 그렇기에 이러한 대립구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다룰 수 있는 소재 역시 무궁무진하다. 감히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살단과 템플기사단의 갈등 역사도 어느덧 10년을 향해 달려간다. 2007년 십자군 전쟁기에서 시작돼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미국 독립혁명기, 카리브 해의 대해적시대, 프랑스 시민혁명기를 거쳐 영국 산업혁명에까지 닿았다. 1년에 하나씩 정식 버전을 꾸준히 내고 있는 이 시리즈는 다음 정착지로 어디를 생각하고 있을까.
증기기관과 톱니바퀴, 그리고 공장굴뚝과 맞닿은 이번 작품.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어...... 솔직히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작 그깟 게임 하나 가지고 별 거창한 생각을 다 한다"고. 하지만 글쎄...... 돈 뿌리고 물 뿌리고, 출생의 비밀과 불치병 테크트리가 난무하는 연속극보다는 훨씬 진중하게 맛있는 테마가 아닐까 싶은데.